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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현의 영화로 보는 세상] 달콤한 사랑? 속절없이 깨진 판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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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현의 영화로 보는 세상] 달콤한 사랑? 속절없이 깨진 판타지

입력
2007.10.06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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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독한 역설과 냉소다. 한 줄의 카피(copy)부터 그렇다. 하나는 사랑을 ‘지랄 같네, 사람 인연’ 이라고 했고, 또 하나는 ‘잔인한 행복’이라고 정의했다. 때문에 결코 해피 엔딩일 수 없다.

비극적이고 잔인한 사랑은 영화나 소설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현실에서도 무수하다. <사랑> (감독 곽경택) 과 <행복> (감독 허진호)은 그런 점에서는 지극히 현실적이다. ‘지랄’ ‘잔인한’은 우리가, 적어도 사랑에서만은 가지고 싶었던 ‘판타지’를 깨버렸다.

판타지가 깨진 사랑은 불행하다. 세상의 온갖 덫을 피해갈 초능력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운명에 걸리고, 처지에 울고, 욕망에 넘어지고, 마음에 속는다. 영화는 그 불행이 사랑 자체가 변했기 때문에 오고, 변하지 않았기에 오지 않는 것도 아니라고 말한다.

<사랑> 의 인호(주진모)는 끝내 변하지 않는다. 사랑하는 미주(박시연)가 어느날 자신이 모시는 어른의 애첩이 돼 나타나도. “여자는 순간”이라는 어른(주현)에게 단호하게 “저는 아닙니다”라고 말한다. 반면 <행복> 의 영수(황정민)는 변한다. 죽음의 병(간경화증)으로부터 자신을 구해준 여자 은희(임수정)에게 “밥 천천히 먹는 것 지겹지 않아. 난 지겨운데”라고 말하고는 도망친다.

그렇다고 인호의 사랑은 아름답게 살아나고, 영수의 사랑은 비참하게 죽어버린 것도 아니다. 사랑도 약속이라면 “내가 지켜주기로” 맹세했기에 끝까지 버리지 않은 인호나, “지금 좋다고 나중에 좋으란 법 있어”라며 미련 없이 여자를 버린 영수나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하기는 마찬가지다.

한 사람은 지랄 같은 운명을 저주하며 그런(사랑이 없는) 인생은 필요 없을 것 같다”며 죽음을 선택했고, 다른 한 사람은 잔인하게 변심해 놓고는 뒤늦게 그것도 다분히 자신의 처지를 반영한 참회의 눈물을 흘렸다고 해서 달라질게 무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영수보다는 인호를, 그의 마음을, 사랑을 더 아름답게 보고 싶어한다. 똑 같은 죽음으로 끝이 나도 은희보다는 미주가 더 행복했을 것이라고 믿고 싶어한다.

참 통속적 감정이라고 해도 어쩔 수 없다. 사랑이란 어차피 통속이고, 통속이기 때문에 보고 또 보고, 하고 또 하고, 듣고 또 들어도 질리지 않은 것일 터. 통속이기 때문에 더욱 더 그보다 완벽한 사랑을 꿈꾼다.

비록 현실에서는 그 판타지가 매번 배신 당할 망정 영화에서만은 그렇지 않기를 원한다. 그래서 허진호 감독의 또 다른 영화 <봄날은 간다> 에서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라고 절규하는 상우(유지태)가 안쓰러웠고, 배신한 영수의 추락을 인과응보라고 여기며, 사랑에 목숨 건 인호의 마지막 모습이 오래오래 지워지지 않는지 모른다.

누구는 ‘사랑, 그 자체가 달콤한 당의정 같은 것’이라고 했다. 그 달콤한 환상을 영화마저 외면한다면 아무리 그것이 ‘현실(리얼리즘)’이라 해도 너무 잔인하지 않을까. 어차피 영화 차제가 환상인데.

문화대 기자 leed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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