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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김정일 건강과 체제 안정

입력
2007.10.06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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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의 평양 2박3일을 TV화면으로 지켜보면서 여러 번 조마조마했다.

첫날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주최한 만찬. 처음엔 서먹서먹했지만 여기저기서 "위하여" 외침과 함께 술잔이 돌자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주탁(헤드테이블)의 노 대통령이 술잔을 들고 일어나 마이크를 잡았다. "남북한 간에 평화가 잘 되고 경제도 잘 되려면 빠뜨릴 수 없는 일이 있습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건강하게 오래 살아야 하시고, 또 김영남 상임위원장이 건강해야 합니다. 두 분의 건강을 위해 건배합시다. 위하여!" 노 대통령의 선창에 참석자들이 일제히 "위하여"를 외치고 박수를 쳤다.

노 대통령은 다음날 답례 만찬에서도 김정일 위원장의 건강을 위해 건배를 제의했다.

만수대 의사당 방명록에 '인민의 행복이 나오는 인민 주권의 전당'이라고 썼을 때와 아리랑 공연 마지막에 김일성 찬가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기립박수를 했을 때도 "괜찮을까" 싶었다. 강정구 교수 사건이 떠올랐다. 1억원 짜리라는 12장생도 자개 병풍 선물도 김 위원장의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의미가 있다.

보기 아슬아슬했던 장면들

걱정대로라면 다음날 '보수 신문'들에는 이런 장면들을 비난하는 기사로 도배가 되어야 마땅했지만 작은 스케치 기사로 처리됐다.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봐도 "회담하러 갔는데 그 정도는 할 수 있는 거 아니냐"는 반응이 많았다.

어, 모르는 사이에 우리사회가 한 단계 성숙한 건가? 아닐 것이다. 그 3일간 노 대통령의 지지도를 9%포인트나 끌어올렸다는 '정상회담'효과로 잠시 너그러워진 탓일 가능성이 높다.

마취상태와도 같은 정상회담 효과에서 깨어나면 국민들은 "김정일 위원장이 건강하게 장수하며 체제 안정을 유지하는 것을 바라야 하는가"라는, 결코 간단치 않은 질문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실향민들을 포함해서 우리사회의 적지 않은 사람들이 정서적으로 이를 받아들이기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수령유일체제의 특성 상, 김 위원장의 건강 이상 또는 갑작스러운 체제 붕괴로 인한 혼란은 북한 주민은 물론 남한과 주변국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재앙이 될 수 있다.

여기서 분노와 거부감을 넘어 냉철한 전략적 판단이 필요하다. 서독 사민당 정권의 동방정책 브레인으로 '접근을 통한 변화'를 주창했던 에곤 바르는 "정당한 분노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말했다. 굶주림, 인권억압, 납치, 대량 살상무기 개발 등 정당한 분노를 일으키는 김정일 체제의 리스트는 끝이 없다.

하지만 그 중의 많은 것들이 그들이 선택한 사상과 이념, 체제에서 비롯되고 있으며 이는 분노만으로 해결하기 어렵다. 점진적이긴 하지만 뿌리로부터 그들을 변화시키기 위한 체계적 접근이 필요하다.

견디기 어려운 독재자 피로

첫날 노 대통령을 영접 나온 김 위원장은 무표정하고 창백했다. 기선제압 용으로, 또는 수 많은 인민이 지켜 보는 공식행사여서 일부러 그랬을 수 있지만 '독재자 피로'(dictator's fatigue) 증상일 수도 있다.

20대 후반인 1960년대 말부터 후계자 수업을 받기 시작해서 70년대에는 아버지 김일성 주석과 공동으로, 80년대부터는 김일성 명예회장 체제 아래 단독으로 북한 정권을 이끌었다.

김 주석 사망 전후로 사회주의 국가 대부분이 붕괴하거나 체제 전환하는 대격변 속에 모든 것을 혼자 결정하면서 헤쳐왔다. 그 스트레스는 엄청났을 것이다. 적절한 시점에 뒷방으로 물러나 앉는 베트남이나 중국의 최고 지도자들은 행복하다.

권력을 휘두를 때는 세로토닌이 샘 솟아 힘든 줄 모르겠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지 평생 권좌에 있어야 할 숙명이라면 지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독재자에게도 '정년'이 필요하다. 이건 인권 차원의 문제다. 하지만 김 위원장은 지금 물러나고 싶어도 그럴 계제가 못 되는 것 같다. 후계준비가 안돼 있고 당장 경제난 극복과 체제안정이 급하다.

6자회담에 적극적이고, 그리도 빼던 남북정상회담을 수용한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그는 노 대통령에게 개혁개방에 대한 강한 거부감을 표시했지만 결국 개혁개방 외에 다른 길이 있을까.

그 어려운 길을 가기 위해서 그는 건강하고 오래 살 필요가 있다. 만사 혼자 결정해야 하는 중압감으로 독재자 피로는 더욱 심해지겠지만.

이계성 논설위원 wk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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