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이 다시 러시아를 정조준하고 나섰다.
불가리아를 방문 중인 사르코지 대통령은 4일 소피아 대학에서 ‘강대국의 책임론’을 역설하면서 러시아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키웠다. 강대국은 권리뿐 아니라 국제사회에서 해야 할 의무도 있는데 러시아는 이런 의무를 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르코지의 발언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초청으로 9, 10일 모스크바를 방문하기에 앞서 나온 것이어서 양국 정상의 첫 대면에서 어느 때보다 썰렁한 분위기가 연출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사르코지 대통령은 강연에서 “책임에는 두가지가 있다. 민주주의의 모범이 되는 것과 국제현안을 해결하는 데 도움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현안을 오히려 더 복잡하게 만들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사르코지 대통령이 언급한 두 가지는 서방이 푸틴 정부를 공격할 때 사용하던 단골 메뉴이자 러시아 정부가 극도로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부분이다. 따라서 사르코지 대통령이 프랑스를 포함한 유럽의 러시아에 대한 반감과 비난을 공개적으로 표명함으로써 정상회담에 앞서 러시아를 압박하려 한 것이 아니냐는 해석이다.
사르코지 대통령이 언급한 민주주의와 국제현안이란 대내적으로 푸틴의 권력독점과 이란 핵프로그램, 코소보 독립문제 등으로 대표되는 서방과의 충돌을 암시한다.
그러나 이 두가지는 모두 푸틴 대통령이 표방하는 ‘강한 러시아의 부활’을 위한 필수조건이어서 정상회담에서 이에 대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음주 양국 정상회담이 유럽과 러시아가 이런 민감한 국제현안에서 ‘마이 웨이’를 알리는 명분찾기 회동이 될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것은 이 같은 이유에서다.
사르코지 대통령의 ‘러시아 때리기’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취임 100일을 즈음한 8월말 사르코지 대통령은 체첸 탄압 등을 이유로 푸틴 정부를 “잔혹한 정권(brutality)”이라고 비난해 큰 파장을 일으켰다.
이후 러시아와 유럽이 동유럽에서 많은 갈등과 충돌을 빚자 유럽을 대표해 러시아와 대립각을 세우는 역할을 자임해 왔다.
그러나 서유럽권에서는 사르코지의 행보가 유럽의 통일된 입장 조율 없이 자의적으로 취해지고 있다는 불만도 적지 않아 취임 이후부터 계속 제기돼온 사르코지의 좌충우돌식 대외 정책이 더욱 논란을 빚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실제 유럽연합(EU)에서는 달라진 러시아의 힘을 현실적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시각도 많아 사르코지의 대 러시아 정책은 유럽의 분열을 부추기는 역효과를 부를 수 있다는 지적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황유석 기자 aquariu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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