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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소문, 나를 파괴하는 정체불명의 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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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소문, 나를 파괴하는 정체불명의 괴물'

입력
2007.10.06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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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하엘 셸레 지음ㆍ김수은 옮김 / 열대림 발행ㆍ344쪽ㆍ1만4,800원

2002년 1월, 독일의 한 이미지 컨설턴트가 dd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가 관자놀이의 흰 머리를 염색하지 않았더라면 훨씬 더 신뢰감을 주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60대 남성이 그렇게 흰 머리가 없을 리 없다는 컨설턴트의 추측일 뿐이었다. 하지만 선거를 앞둔 유권자들은 “머리카락을 염색한 총리가 분식회계까지 한다”며 그를 비난했다. 총리는 소송을 통해 사실을 밝혀냈지만, 이미지에 막대한 타격을 입었다.

소문에 귀가 솔깃할 때면 우리는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랴’는 속담으로 스스로를 정당화하지만, 이 속담이 늘 진실을 담보하는 것은 아니다. 많은 경우 소문은 뜬금없이 생겨나 근거 없이 희생양을 할퀸다. 그걸 알면서도 우리는 왜 그렇게 쉽게 소문의 유혹에 넘어가고 유포에 가담하는 것일까.

독일의 미디어 전문 변호사가 쓴 이 책은 소문이 어떻게 탄생하고 유포되며 끝내 망령으로 살아남는지를 분석한 소문의 사회심리학 개론서다.

치명적인 명예훼손, 기업의 파산, 무차별 살인 등 끔찍한 결과를 불러일으키는 소문의 메커니즘이 저자 본인의 경험을 비롯한 수많은 실제 사례들을 통해 생생하게 분석된다.

저자에 따르면 “소문이 자라나기에 안성맞춤인 자양분은 전형적인 편견(예를 들어 반유대주의), 소망들, 두려움, 특히 상실에 대한 두려움(일터), 질투, 그밖의 공격적인 감정들”이다.

한 인터넷 설문조사에서도 사람들이 소문 유포에 참여하는 가장 큰 원인은 ‘자신의 편견을 확고히 하려는 무의식적 욕구’(19.4%)인 것으로 나타났다. 섹시스타의 미담기사보다 혼외정사 기사가 훨씬 크게 다뤄지는 이유다.

저자는 오늘날 소문 유포의 일등공신으로 언론과 인터넷을 지목한다. 감성 저널리즘으로 무장한 언론이 소문에 공신력을 부여하면, 소문의 아우토반인 인터넷이 광속의 속도로 그 소문을 실어나른다.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저자가 내놓는 소문 처방전. 복장 터질 일이지만 가장 좋은 방법은 침묵이란다. 인간의 인지구조는 자신의 확신과 모순되는 뉴스는 배척하도록 돼 있기 때문에 소문을 믿게 만든 감정적인 이유를 공박하지 못한다면 해명은 소문의 부차적인 정보에 그칠 뿐이다.

그러나 소문 유포자가 누구인지 안다면 그의 저열한 동기를 폭로함으로써 소문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소문의 벽에 둘러싸인 선거철, 의미심장하게 읽히는 책이다.

박선영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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