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담장벽화와 함께 묵은 감정 씻어냅시다.”
4일 오후 인천 연수구 연수동 연수1차 아파트 113동 담장 앞. 노인과 주부, 어린이들이 하나 둘씩 모여들더니 익숙한 솜씨로 페인트 통을 들고 붓으로 꽃과 나무를 그려 넣고 있다.
임대아파트 2,000여가구와 일반 분양아파트 300여가구가 함께 살고 있는 이 아파트 단지에서는 지난 3월부터 주민 모두가 참여하는 ‘동거동락(同居同樂)’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 “마음의 벽을 허물자”는 취지로 이 아파트 113동에서 117동에 이르는 길이 950m의 담장에 벽화를 그리고 있다.
연수구와 주민들에 따르면 2,370가구가 입주해 있는 이 아파트 단지는 영구ㆍ임대 아파트와 분양아파트가 함께 이웃사촌을 형성하고 있다. 하지만 1992년 입주가 시작된 줄곧 임대와 일반 분양아파트 사이는 ‘보이지 않는 장벽’이 있을 정도로 계층간 반목과 갈등이 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동별로 경제적 수준이 다르다 보니 주민들은 서로의 구역에 발을 들여놓지 않았고 아이들 역시 함께 뒤섞여 노는 일이 없었다. 또 툭하면 주차문제로 부딪히기도 했다.
이들의 벽이 좀처럼 허물어질 기미가 없자 아파트단지 내에 있는 연수종합사회복지관이 적극 나섰다. 복지관은 아파트단지 내 계층간 갈등을 해소하고 지역에 대한 애착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주민 협동 사업을 찾던 중 지난 3월 영구임대ㆍ장기임대ㆍ분양아파트 대표를 불러 아파트담장벽화 그리기 사업을 제안했다.
주민들은 이를 흔쾌히 받아들였다. 이 사업비 960만원은 연수구청에서 지원했다.
이에 따라 주민들 사이에서 벽화 도안 설문이 이뤄지고 어린이, 주부, 노인을 망라한 주민 70여명이 지난 7월부터 복지관 강당에서 직접 밑그림 그리기에 나섰으며 지난달 말에는 200여명이 함께 참가, 아파트 담장 벽화 그리기를 거의 마무리했다.
담장그리기 벽화 그리기 이후 아파트 단지 분위기는 180도 변했다. 마주치더라도 피하던 사람들이 만나면 서로 먼저 인사하고 악수를 청한다. 연수1차 영구 임대 아파트 노인회 회장 연제영(75)씨는 “벽화 그리기 사업을 한 이후 서먹했던 관계는 사라지고 만나면 자연스럽게 벽화 얘기를 꺼내며 말을 붙인다”고 전했다.
이번 사업에 참여한 주민 김모(46ㆍ회사원)씨는 “주민들 모두 함께 나서서 뭔가를 해본 적이 없었는데 이번 작업을 통해 주민들끼리 서로 많이 가까워져 아파트 단지 분위기가 한층 훈훈해진 것 같다”고 말했다.
동거동락 추진위원회 최병선(52) 위원장은 “이번 사업을 통해 갈등을 넘어 화합하는 좋은 계기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송원영 기자 wys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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