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한국국제협력단(KOICA)의 최빈국 지원 및 봉사활동 등을 위해 9월30일부터 공항을 통해 출국하는 여행객들로부터 ‘국제빈곤퇴치기여금’을 징수하면서 정작 주관 부처인 외교통상부의 외교관들을 면제 대상에 포함시켜 빈축을 사고 있다.
정부가 지난달 11일 국무회의에서 통과시킨 ‘한국국제협력단법 개정 시행령’에 따르면 한국에서 출발하는 국제선 항공기 탑승객들은 일괄적으로 1,000원의 빈곤퇴치기여금을 내야 한다. 출국납부금(10,000원)이나 공항이용료(17,000원)처럼 항공권 요금에 자동으로 포함되는데, 2세 미만 어린이, 국외 입양아, 환승객, 항공사 승무원 등과 함께 외교관도 면제 대상에 포함된 것으로 4일 밝혀졌다.
업무 편의 위한 혜택?
외교부와 인천공항공사 및 각 항공사에 따르면 외교관에게 빈곤퇴치기여금 부과를 면제해준 것은 항공권 구입시 공항세와 공항이용료를 면제해주는 시스템을 개선하기 힘들다는, 다소 이해하기 힘든 편의주의적 태도에서 비롯됐다.
항공사 관계자들은 “공항세를 일률적으로 부과하거나 면제하는 ‘통합 코드’가 있는 상황에서 외교관만 따로 빼내어 부과 대상으로 지정하는 새로운 부과 체계를 만드는데 기술적 어려움이 크다”고 주장했다. 항공예약시스템의 복잡한 특성상 외교관들에게 공항세 등 다른 항목과 달리 빈곤퇴치기여금만 징수하는 별도 계정을 신설할 수 없다는 것이다.
외교부 관계자는 “외교관에게도 당연히 부과돼야 한다고 판단, 수 개월 동안 방법을 모색해봤지만 항공사들의 반대가 거세 무산됐다”고 해명했다. 그는 “항공사 측이 ‘외교관에도 부과할 것을 고집한다면 징수 업무를 대행할 수 없다’고 주장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여행객들은 “납득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공항세나 공항이용료는 공무 출장이 잦은 외교관 특성상 혜택을 줄 수 있지만 “빈곤 퇴치라는 세계적 과제 해결에 동참한다”며 법령 개정을 주도한 외교부가 빈곤퇴치기여금에 대해 스스로 ‘면제 혜택’을 준 것은 온당치 못하다는 지적이다. 회사원 장모(39)씨는 “시스템 개선이 귀찮다면 앞으로도 외교관은 해외 출국과 관련해 어떤 형태의 돈을 부과한다 해도 계속 면제시켜주겠다는 얘기냐”며 어이없어 했다.
외교부 ‘쉬쉬’은폐 논란
외교부는 이 같은 ‘외교관 빈곤퇴치기여금 부과 면제’사실을 슬쩍 덮고 가려 했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외교부 인도지원과가 지난달 11일 대변인 명의로 언론에 배포한 보도자료는 “(빈곤퇴치기여금) 면제 대상은 2세 미만의 어린이, 국외 입양아, 환승객, 승무원 등이며…”라고 적시, 외교관은 얼버무리고 지나갔다.
해외출장이 잦은 회사원 박모(33)씨는 “외교부 자체 예산으로 빈곤퇴치기여금을 따로 낼 수도 있지 않냐”며 “외교부가 추진하는 일인데도 기술적 이유를 들며 외교관만 면제시켜 준 모양새가 좋아 보이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김정우 기자 woo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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