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ㆍ4 선언'에 담긴 남북 경제협력 분야에 대한 합의사항은 예상을 뛰어 넘는 수준이었다. 한국일보는 4일 오후 '10ㆍ4 선언'이 발표된 직후 북한 경제 전문가들을 초청해, 남북 경협의 성과를 평가하고 향후 추진방향을 점검하는 좌담회를 가졌다.
이날 좌담회에는 고일동 한국개발연구원(KDI) 선임연구위원, 배종렬 수출입은행 북한조사팀장, 홍순직 현대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이 참석했다.
참석자들은 10ㆍ4선언의 경협 합의사항들에 대해 "남북의 경제 협력에 대한 강한 의지를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상당히 긍정적"이라고 평가한 뒤 "이행 과정에서 적지 않은 난관이 있겠지만 합의 내용의 우선 순위를 둬서 조속한 이행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경협 총평
배종렬 = 1차 정상회담에 비해 대단히 합의사항이 많습니다. 우리 측이 준비해 간 의제들이 상당수 포함된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합의사항이 많기 때문에 후속 회담 과정에서 우선순위 등을 놓고 의견 상충이 있지 않을까 우려됩니다.
여러 합의 사항 중에서도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설치 ▦철도 연결에 대한 각종 진일보적인 조치 ▦조선협력단지 등 일반적인 협력 확대 등을 주목해야 합니다.
백두산 관광 역시 경제적으로 상당한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이 네 가지 프로젝트를 원활히 추진하기 위해 차관급 회의를 부총리급으로 격상했다고 판단합니다.
홍순직 = 남북의 합의 이행에 대한 의지가 매우 강하게 반영돼 있는 것 같은데요. 상당히 긍정적으로 봅니다. 중장기적 측면에서 남북공동경제협력제 조성 기반을 마련하는데 역점을 둔 것으로 보입니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합의문에 백두산 관광에 대한 언급만 있고 개성 관광에 대한 얘기가 없다는 건데요. 개성 관광은 유적 관광, 산업 관광으로서 충분히 가치가 있다는 판단입니다.
분야별 평가
고일동 = 역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설치입니다. 평화협력특별지대라는 용어 자체가 말해주듯이 단순히 해주지역에 경제특구를 만드는 문제가 아닙니다.
북방한계선(NLL) 문제나 공동어로구역 지정, 민간 선박의 해주직항로 통과 등을 한 덩어리로 인식해야 한다는 겁니다. 군사문제를 더 이상 군사문제로만 풀지 않겠다는 고심이 엿보이는 대목이죠. 금강산관광 사업이나 개성공단 사업도 사실 경제 효과보다 안보 효과가 더 크다고 판단합니다.
홍순직 =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는 경제를 통한 정치ㆍ안보문제의 병행 해결을 염두에 둔 것 같습니다. 경협을 통해 북핵 문제와 남북 관계의 선순환을 이루고자 하는 것이죠.
다만, 한가지 걱정되는 것은 이제 개성공단이 겨우 첫 단추를 꼈을 뿐인데, 해주경제특구 등을 추가로 조성하게 될 경우 과연 정부가 재원을 투입할 여력이 있느냐는 점입니다. 혹시 기존 개성공단 사업 활성화와 충돌이 되지는 않을까 걱정됩니다.
배종렬 = 말씀하신 것처럼 해주공단은 개성공단과 달리 안보 문제와 패키지로 추진되는 것이기 때문에 정치적 개입이 더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다시 말해 해주공단 건설이 개성공단보다 더 난제가 많을 수 있다는 얘깁니다. 이 점이 우려스러운 대목입니다.
고일동 = 차관급 회의였던 남북경제협력추진위원회(경추위)를 부총리급 남북경제협력공동위원회로 격상한 것도 상당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 두 단계 지위가 격상되면서 훨씬 강력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홍순직 = 백두산 관광을 실시하기로 한 것도 고무적입니다. 현재 중국을 통한 국내 백두산 관광 인원이 연간 12만명을 넘는데요. 직항로 설치를 통해 백두산 관광이 활성화되면 상당한 경제적 효과가 기대됩니다. 다만 이를 활성화하기 위해선 평양 관광과 연계를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후속 조치 및 보완 과제
홍순직 = 경협이 진전되면 재원을 어떻게 조달하느냐도 관건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북측이 해주항을 현대화한다든지, 컨테이너항을 만든다든지 하는 요구를 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시중의 부동자금 중 일부를 활용하는 등의 적극적 대책이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고일동 = 재원조달에 대한 우려가 많은 것 같은데, 당장 큰 자금이 필요한 것은 많지 않다고 봅니다. 개성-신의주 철도와 개성-평양 고속도로 개ㆍ보수를 예로 들어 보자면 단순히 개ㆍ보수만으로 끝날 수 있는 것인지, 재시공까지 해야 하는지 합의가 이뤄지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겁니다. 언젠가는 자금이 필요하겠지만, 당장 거액의 자금이 요구되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홍순직 = 남북경협 확대 의지는 충분히 확인됐습니다. 이제 ?방향은 정해진 만큼 조속한 현장 실태조사와 실무협의 등이 이뤄져야 합니다. 국민적 합의를 통해 재원 조달도 해야 합니다.
차기 정부에서 연속성을 유지하는 문제도 과제 입니다. 법적,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하기 위한 군사 보장 조치도 빨리 이뤄져야 한다는 판단입니다.
고일동 = 통행 통신 통관 등 3통 문제를 조속히 완비해 나가겠다고 했는데, 이 문제가 조속히 선결돼야 합니다. 중국 개방의 상징인 선전공단을 모델 삼아 24시간까지는 아니라도 통행시간을 늘려 자유롭게 통행을 가능하도록 해야 합니다.
또 새로 합의된 사항의 이행도 중요하지만, 양측 모두 기존 남북한 협력사업에서 좀 더 양보하고 개선하고자 하는 자세도 중요할 것 같습니다.
배종렬 = 남북한 경제 협력이 북한 경제의 국제화에 도움을 준다는 인식을 국제 사회에 심어줄 필요가 있습니다. 단순히 북한이 개혁과 개방을 확대한다는 식은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시장 논리보다 경제 지원의 측면이 강했는데, 앞으로는 북한이 국제화되면 경제 지원이 아니라 '서로 주고 받는(Give and take)' 개념이 되어야만 합니다.
후속 협상에서는 반드시 이런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입니다. 또 경제 사업은 여러 개를 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하나라도 성공적으로 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명심했으면 합니다.
대담자 프로필
● 고일동 한국개발연구원(KDI) 선임연구위원 (53)
- 고려대 경제학과, 미국 아이오와주립대학 경제학 박사.
- KDI 기획조정실장, 북한경제팀장.
- KDI 선임연구위원
● 배종렬 수출입은행 북한조사팀장 (50)
- 서울대 국제경영학 박사.
- 통일부 정책자문위원
- 통일경제연구협회 사무총장
● 홍순직 현대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 (45)
- 중앙대 경제학 박사 수료
- 북한연구학회 이사
- 북한경제100인포럼 감사
- 전 민족평통 상임위원
이영태 기자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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