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호승 / 창비"누더기가 되고 나서 내 인생이 편안해졌다"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 오죽하면 비로자나불이 손가락에 매달려 앉아 있겠느냐/ 기다리다가 죽어버려라/ 오죽하면 아미타불이 모가지를 베어서 베개로 삼겠느냐/ 새벽이 지나도록 /摩旨(마지)를 올리는 쇠종 소리는 울리지 않는데/ 나는 부석사 당간지주 앞에 평생을 앉아/ 그대에게 밥 한 그릇 올리지 못하고/ 눈물 속에 절 하나 지었다 부수네/ 하늘 나는 돌 위에 절 하나 짓네’
정호승(57)의 시집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 (1997)에 실린 시 ‘그리운 부석사’의 전문이다. 7년 전에 그와 경북 영주의 부석사로 문학기행을 갔다. 그때만 해도 중앙고속도로가 뚫리기 전이었다. 내륙의 오지였던 영주로 가기 위해서는 삼국시대 때부터 신라 고구려 백제가 통하던 길, 서기 2000년에도 호서(충북 단양)와 영남(경북 풍기)을 잇는 유일한 길이던 700여미터 높이의 죽령을 넘어가야 했다. 봄비가 뿌리던 기억이 난다. 사랑하다가>
그의 시집을 곁에 두고 가끔 펼쳐 본다.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 정호승은 “불교잡지에서 읽은 어느 스님의 말인데, 큰 충격이었다”며 “그 말을 가슴에 담아두었다가 7년 만에 낸 시집 제목으로 삼았다”고 말했다.
그는 “죽음만한 무게와 깊이로 사랑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였다”고 덧붙였다. 그만한 사랑을 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만한 고통을 통과하지 않으면 안 된다. ‘누더기가 되고 나서 내 인생이 편안해졌다/ 누더기가 되고 나서 비로소 별이 보인다’(‘누더기별’에서).
40여년을 누더기만 입었던 성철 스님의 입적을 쓴 듯한 이 시집의 서시도 아름답다. ‘새가 죽었다/ 참나무 장작으로/ 다비를 하고 나자/ 새의 몸에서도 사리가 나왔다/ 겨울 가야산에/ 누덕누덕 눈은 내리는데/ 사리를 친견하려는 사람들이/ 새떼처럼 몰려왔다’(‘새’ 전문).
하종오 기자 jo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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