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트해에서 발칸까지’
러시아의 부활로 국제질서가 요동치는 곳이다. 동유럽으로 경계를 확장하려는 서유럽은 구소련의 영광을 재현하려는 러시아의 야심에 막혀 진땀을 흘리고 있다.
‘러시아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놓고 유럽연합(EU)에서는 신구 회원국 간, 진보_보수 세력 간 논쟁을 넘어 분열의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불과 얼마전까지만 해도 발칸의 코소보를 세르비아에서 분리, 독립하는 것은 시간 문제처럼 보였다. 7년여에 걸쳐 수십억 달러에 달하는 막대한 돈과 정성을 아끼지 않았던 유엔과 EU 덕분에 세르비아 정부도 ‘독립을 막을 방도가 없다’는 백기투항 직전까지 몰렸다.
중재를 맡은 마티 아티사리 전 핀란드 총리는 노벨평화상 유력후보로 거론됐다. 그러나 러시아가 예상외로 강력히 반대하면서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됐다.
러시아는 미국과 유럽이 유엔 바깥에서 코소보의 독립을 승인하는 실력 행사를 강행한다면 친서방 노선을 걷고 있는 그루지야, 몰도바, 우크라이나 등 구소련권 국가 내 친러시아 세력을 독립시킨다는 강력한 대응책을 천명했다. 코소보 독립의 대가로 동유럽이 친서방_친러시아로 찢어지는 것은 서방으로서는 최악의 시나리오이다.
코소보 독립문제는 러시아가 일으키고 있는 파장의 한 부분에 불과하다. 거침없이 진행되던 EU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동진은 우크라이나, 벨로루시, 코카서스에서 급브레이크가 걸렸다.
2005년까지만 해도 러시아는 EU의 동진과 나토의 동진을 명확히 구분했다. 나토는 군사적 위협이 될 수 있지만, 유럽의 확장은 러시아의 경제적 이익과 통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유럽의 동진도 이제 러시아에는 매력적인 사과가 아니다.
유럽의 경제에 기대기보다는 러시아의 경제력을 주변으로 확산시키는 것이 국익에 더 유리하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 매장량이 각각 세계 1, 2위인 천연가스와 원유는 러시아 경제의 파워하우스이다.
미국이 폴란드와 체코에 설치하려는 미사일방어(MB) 기지 설치를 러시아가 완강히 반대하는 것도 유럽은 이해할 수 없다. 안보 위협을 내세우고 있지만 러시아 스스로 이는 명분에 불과하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리란 것이 유럽의 생각이다.
프랑스의 싱크탱크인 국제관계연구소(IFRI)의 토머스 고마트는 “다음 10년간 러시아가 유럽의 최대 현안이 될 것이 분명하다”며 “러시아를 파트너로 볼 것인지, 위협으로 볼 것인지 대답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에스토니아에 대한 사이버 테러, 세계 최대 천연가스 회사인 가즈프럼의 유럽 가스시장 통제 야욕, 영국과의 스파이 논란, 러시아 폭격기의 노르웨이 영공 침범 등 일일이 열거하기 힘든 최근의 유럽과의 갈등은 동유럽을 무대로 벌어질 러시아와 유럽의 다음 전쟁의 예고편이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정부의 한 고위관리는 3일 “공식적으로 미국과 입장을 같이 하지만, 내부적으로 내 동료의 절반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지지하다”고 말했다. 유럽의 분열을 상징하는 독일의 고민이다.
황유석 기자 aquariu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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