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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슴도치의 우아함' 작가 바르베리, 만화가 김동화 작업실 찾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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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슴도치의 우아함' 작가 바르베리, 만화가 김동화 작업실 찾아

입력
2007.10.04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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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 프랑스문화원 초청으로 1일 방한한 프랑스 소설가 뮈리엘 바르베리(38)씨가 3일 오전 만화가 김동화(50)씨의 서울 서교동 작업실을 방문했다. 8월말 번역 출간된 바르베리씨의 두 번째 장편 <고슴도치의 우아함> 은 30주 연속 프랑스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른 화제작으로, 국내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만화, 다도, 바둑 등 한국 및 일본 문화에 관심이 많은 바르베리씨는 불어 번역된 김씨의 <황토빛 이야기> <빨간 자전거> 를 감명깊게 읽었다고 말해왔다. 김씨의 작품은 재작년 프랑스 비평가들이 뽑은 올해의 만화 ‘베스트 5’에 선정된 바 있다.

뮈리엘=서너 달 전 프랑스 대형 만화 출판사 카스터만에서 번역된 일본 만화가 다니구치 지로의 책에 발문을 쓰면서 사장에게 선생님의 <황토빛 이야기> 를 선물 받았다. 몇 쪽 넘겨보고 깜짝 놀랐다. 망가(일본만화)에 없는 시적인 미감이 강렬했다. 공쿠르상을 받은 내 친구는 만화를 읽어본 적도 없는 사람인데 이 책을 읽곤 만화 전도사가 됐다.

김동화=고맙다. 나도 <고슴도치의 우아함> 잘 읽었다. 정말 섬세한 소설이다. 대단한 사건 없이 500쪽 가까이를 등장인물의 감정과 느낌으로 이끌어갔다. 진폭이 큰 예민한 감정을 즐기면서 재미나게 읽었다. ‘정치라는 것은 부자들이 놓치고 싶어하지 않는 장난감’ 같은 표현에도 굉장히 공감했다.

뮈리엘=선생님 작품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꽃이다. 묘사의 아름다움을 넘어 꽃과 꽃향기가 중요하고도 풍부한 의미를 상징하고 있다고 느꼈다. 꽃이 사물 자체에 머물지 않고 상징의 차원으로 나아가는 것은 다른 나라 만화에선 볼 수 없는 특징이다.

김동화=조그만 집에 살던 어린 시절, 아버지가 제라늄 화분을 수십 개 사오셨다. 그 꽃에서 나는 비릿한 향기를 좋아했다. 지금도 그 향기를 맡으면 아버지가 생각난다. 한국에선 남자가 꽃을 좋아하면 ‘바람둥이’라고도 하는데 내겐 로맨스와 더불어 창작의 에너지다.

뮈리엘=첫 소설 <맛> 에서 두 쪽에 걸쳐 제라늄 향기에 대해 묘사한 적이 있다. 나도 좋아하는 꽃이다. <황토빛 이야기> 엔 한겨울 잎이 다 떨어진 나무에 나비가 앉는 걸 보고 엄마가 어린 딸에게 “저 나비가 나무를 변화시킬 거야”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 때 꼬마 아이는 “나비가 나무를 불쌍히 여겨서 그래요”라고 답한다. 나비를 생각하는 것만으로 앙상한 나무가 아름다워진다. 무척 시적인 표현이고, 서양은 그런 미감에 무기력할 수밖에 없다.

김동화=서양 사상이 유물(唯物)에서 시작된다면 한국을 비롯한 동양 사상은 유심(唯心)에서 비롯한다. 불어로 표현하면 에스프리(esprit). 우린 보이지 않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그림을 그릴 때도 여백을 추구한다.

뮈리엘=일본 영화감독 오즈 야스지로는 자신의 묘비에 ‘무(無)’라고 새겨놨다고 들었다. 흔히 유럽인들은 아시아 여성들이 유교적 문화 속에서 부차적 존재로 취급된다고 여기는데 <황토빛 이야기> 에선 여성의 위상이 세계의 어떤 문학 작품보다도 가치있게 표현됐다.

김동화=한국 여성에겐 한(恨)이라는 게 있다. 한을 알지 못하면 한국을 모르는 것이다. 옛날 남자들은 무뚝뚝해서 그저 ‘다녀오리다’ 하곤 외출한다. 금방 올지, 한달 후에나 올지 알 수가 없다. 여자들에겐 동구 밖을 쳐다보는 그런 기다림이 일상이었다. 이런 것들이 한을 만들어가면서 한국 여성을 특별하게 만들었다.

뮈리엘=나를 비롯한 프랑스 여성의 내면에서 그와 비슷한 것을 찾으라면 슬픔 아닐까. 특히 사랑에서 비롯되는 고통과 상처 말이다. 물론 한과는 거리가 있겠지만.

김동화=창작은 강의 모래섬 같은 것이다. 물이 움직일 때마다 조금씩 쌓여 모래톱을 이루는 것이 창작 아닐까. 영감은 어부가 고기를 잡듯 포착되지 않는다. 창작은 온몸이 저릴 정도의 고통이지만, 또 얼마나 달콤한 것인지.

뮈리엘=맞다. 차기작 내용을 묻는 질문이 많은데 아무 계획도, 할 말도 없다. 나로선 마음이 기쁘고 가벼워지는 시간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 그 때 떠오르는 좋은 것들을 붙잡으면 놀랍게도 좋은 글이 나오게 된다.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혼자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새벽에 주로 작업하는 이유가 그렇다.

김동화=내 만화 인생의 큰 스승이 되는 세 작품이 있는데 <어린 왕자> <갈매기의 꿈> <파레아나의 편지> 다. 당신은 어떤가.

뮈리엘=<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는 내가 처음 읽은 소설이자 늘 침대 머리맡에 놓아두는 작품이다. 미국 SF 작가 오손 스콧 카드(Orson Scott Card)의 ‘대장장이 알빈’ 연작도 좋아하는 작품이다. 홍콩, 뉴질랜드를 거쳐 내년엔 교토에서 세 번째 장편을 쓸 계획이다.

김동화=내년 1월 카스터만 초청으로 프랑스 앙굴렘에 가서 독자 사인회를 갖는다. 한국-프랑스 양국의 우정을 주제로 한 신작을 위해 취재 여행도 한다. 6ㆍ25전쟁에 참전한 한 프랑스인 이야기가 될 것 같다. 내년 11월 교토에서 ‘세계 만화가 대회’가 열리니까 다시 만나자.

이훈성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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