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의 발전과 융합은 21세기 지식ㆍ정보화 사회의 시대적 요청이자, 선진국으로 가는 길목인 국민 소득 3만 달러를 이루기 위한 핵심 과제이다. 산학협력의 원천이 되는 공학(工學) 교육의 역할이 중요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의 상황은 '이공계의 죽음'을 거론할 만큼 인재 양성에 있어 후진성을 면치 못하고 있다. 공학 교육의 현실을 진단해보고 선진국의 사례를 통해 이공계 육성의 혁신과 변화를 유도하기 위한 해법을 4차례에 걸쳐 모색해 본다.
8월 서울대 공대는 큰 충격에 빠졌다. 1946년 설립 이후 61년 만에 신임교수 공채에 실패한 것이다. 40여명의 지원자 중 적임자가 단 1명도 없을만큼 실력은 수준 이하였다. 최근 취임한 강태진(55) 신임 공대 학장은 "지난 10년간 공대는 죽어 있었다"고 단언했다. 기업과 사회가 원하는 인재 배출에 소홀했음을 인정하는 대목이다.
두뇌 유출은 이미 표면화하고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이 5월 펴낸 '신성장동력리포트'에 따르면 미국에서 박사 학위를 딴 뒤 현지에 눌러앉은 이공계 인재의 비율은 92~95년 20.2%에서 2000~2003년 46.3%로 급증했다.
반면 국내로 돌아오는 이공계 박사는 2003년 919명에서 지난해 500명으로 46%나 줄어 고급 인력의 귀국 기피현상이 심화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상태가 지속될 경우 '이공계 두뇌 공동화' 현상까지 우려된다.
'외화 내빈' 공대 교육
'이공계 위기'라고 하지만 매년 대학에서 쏟아져 나오는 이공계 인력 숫자만 놓고 보면 주요 선진국과 비교해도 전혀 뒤쳐지지 않는다. 2005년 우리나라 공대 졸업생은 6만9,000여명으로 미국(7만3,000여명)과 대등한 수준이다.
인구 1,000명당 공대 배출 인력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1위이고, 인구가 비슷한 영국(2만9,000여명)에 비해서는 두 배를 넘으니 오히려 공급 과잉을 걱정해야 할 정도다.
사정이 이런데도 왜 산업 현장에서는 쓸만한 인재가 부족하다고 아우성을 칠까? 원인은 교육의 질에 있다. 각종 통계 수치를 통해 들여다 본 국내 공학교육의 현실은 초라함 그 자체다.
지난해 영국 '더 타임스'가 선정한 세계 100대 공과대에 한국은 한국과학기술원(KAISTㆍ37위)과 서울대(67위) 두 곳만 가까스로 이름을 올렸다. 미국(27개)은 물론 중국(6개), 일본(5개)보다 떨어지는 수치다.
대학 경쟁력 판단의 핵심 지표인 재정지원도를 보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 진다. 우리의 학생 1인당 고등교육 지출액은 7,089달러로 OECD 평균(1만1,254달러)의 63%에 그치고, 그나마 공대 교육부문에 투자하는 비중도 18.1%에 불과하다.
적은 예산으로 대학마다 차별성 없는 붕어빵식 교육 시스템을 운영하다 보니 하향 평준화한 고만고만한 인재들만 양산할 수밖에 없다. 이런 환경에서 산학협력이나 현장 밀착형 교육을 통한 맞춤형 인력 공급은 꿈도 꿀 수 없는 것이 어찌보면 당연한 얘기다.
정부가 '두뇌한국(BK)21'과 같은 대형 국책 사업을 추진하면서 대학들의 눈높이를 크게 높인 점도 빼놓을 수 없는 요인이다. 지원이 연구 및 개발(R&D) 분야에 집중되면서 자체 역량이 부족한 지방 대학들마저 너도나도 생산 현장의 수요와 무관하게 'R&D 중심대학'을 부르짖고 있다.
헛 돈 쓰는 문어발식 재정지원
현재 이공계열에 대한 정부의 재정 지원은 교육부의 BK21ㆍ누리(NURIㆍ지방대학 혁신역량 강화)ㆍABEEK(한국공학교육인증원의 인증 프로그램) 사업, 정보통신부의 창업지원 사업, 산업자원부의 산학협력중심대학ㆍTIC(지역기술혁신센터) 사업 등 부처별로 분산돼 있다.
이처럼 정부주도의 나눠주기식 배분은 부처간 사업 조정이나 연계가 미흡할 수밖에 없어 투자 중복 등 예산의 비효율적인 집행과 사후 관리 부실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단순한 시설확충이나 예산 확대 등 양적 팽창에 치우친 정부 지원책으로는 진정한 산학(産學) 협력을 기대하기란 무리다. 대학의 기술이전율을 보면 산업현장과의 괴리가 보다 명확해 진다. 2005년 국내 대학의 연간 기술개발이전율은 10.1%로 연간 기술개발 건수가 우리와 비슷한 영국(29%)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산업체의 참여가 형식에 그치다보니 기술 개발이 실제 수익 창출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형성하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이는 필연적으로 투자 감소로 나타나 현재 기업의 전체 R&D 투자 중 대학 지원이 차지하는 비중은 2%대까지 떨어졌다.
이상조 연세대 공대 학장은 "이제는 공학 교육도 원칙으로 돌아가 사회가 요구하는 교육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우수 인재를 다시 끌어들일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이삭 기자 hi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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