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이명박 후보가 미국 방문 길에 조지 부시 미 대통령과 면담할 것이라는 이 후보 측의 발표는 설익은 희망사항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났다.
고든 존드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부대변인은 면담 요청을 받은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회담이 계획된 바 없다"고 공식 부인했다. 그는 "미국은 어떤 식으로든 한국의 대선 정국에 말려드는 데 관심이 없다"고 밝혀, 면담 불발이 미국측의 적극적 거부의 결과임을 분명히 했다.
면담 추진과 그 발표 과정은 실소를 자아낸다. 그러나 단순한 해프닝이라고 웃어넘기기도, 이 후보 측의 실망만으로 끝나기도 어렵다. 지지율이 50%가 넘는 가장 유력한 대통령 후보의 일이라는 점에서 국가적 망신살이 뻗쳤기 때문이다.
우리 외교 당국은 물론 주한 미대사관 측과도 아무런 사전 조정을 거치지 않고, 개인적 연줄에 의존한 결과라는 점에서는 이 후보 스스로의 업무 추진력이나 협상력, 사람 보는 눈 등 지도자로서의 자질에 대한 의심을 자극하기도 한다.
백악관 국가장애위원회 강영우 정책위원의 보고를 별도로 확인하지 않은 채 기정사실화한 성급한 발표도 문제지만, "한국 정부의 항의와 압력이 있는 것 같다"는 강 위원의 개인적 추측까지 그대로 보도한 일부 언론의 자세에도 반성이 필요하다.
미국 대통령과의 만남이 스스로의 정치적 위상을 끌어올릴 것이라 믿고 애써 추진한 구시대적 발상과 행태는 더욱 한심하다. 과거 노태우ㆍ김영삼 전 대통령이 대선 후보로서 미국 대통령을 만나 '국제적 명망'을 과시하려던 적이 있긴 했다. 또 미국이 아니더라도 러시아나 일본 방문 등으로 정치적 효과를 누리려던 대선후보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런 시대는 갔다. 그저 기념사진을 찍기 위한 '정치 쇼'에 혹할 국민이 얼마나 될까. 남북정상회담 자체는 반기면서도 대선에 미칠 정치적 영향력을 경계할 정도인 국민의식 수준으로 보아 오히려 '사대주의' 비난 등 역풍만 커질 수 있다. 국토개발 시대와 이어진 이미지의 이 후보라면 더욱 구시대와의 단절에 힘써야 할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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