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면에 불이 들어오면 자동분쇄기가 연두색 자명종 시계를 갈기 시작한다. 영화 ‘올드보이’ 주제곡의 장중한 선율이 깔리고, 사그라지는 자명종 앞에는 잿빛 가루가 쌓인다. 시계가 먼지더미로 화하기까지 4분2초. 소멸해가는 것의 애잔함이 보는 이의 심장을 툭 건드린다. 감성과 은유의 힘이 돋보이는 신기운(31)의 싱글채널 비디오 작품 ‘알람시계’다.
신기운 이진준(33) 류호열(36) 박준범(31) 수지 리(35) 박소윤(32) 등 젊은 비디오 아티스트 6인의 싱글채널 비디오 작품을 선보이는 ‘채널 원(Channel 1)’전이 서울 사간동 갤러리현대에서 21일까지 열린다. 싱글채널 비디오 작품이란 영상을 재생할 때 사용되는 플레이어 장치나 모니터, 프로젝터 등이 하나인 단채널 영상 작품. 인터넷 디지털아트가 범람하는 시대, 미디어아트의 고전으로 돌아가자는 취지에서 기획됐다.
신기운은 아이팟, 플레이스테이션, 동전, 아톰인형 등 다양한 오브제들을 직접 만든 그라인더로 가는 과정을 찍어 순차와 역순으로 재생, 소멸과 생성의 과정을 압축해 보여준다. 3~6일가량 찍은 영상을 1,000배속으로 돌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모든 것은 언젠가 사라진다’는 사실을 직접 목격케 하는 애잔한 작품들이다.
류호열은 회색도시를 배경으로 모형의 고층건물과 자동차들이 펄쩍펄쩍 경쾌한 점프를 하는 ‘태그(Tag)’, 기다란 가로등 그림자가 실제 가로등을 축으로 삼아 빙글빙글 가속의 회전을 벌이는 ‘랑프(Lampe)’ 등을 통해 재기발랄한 도시적 감수성과 유머를 보여준다.
한낮 캄캄한 방에 드리워진 블라인드의 움직임과 새어들어오는 빛을 통해 바깥세상의 사정을 짐작케 하는 이진준의 ‘불면증’, 책상에 앉은 인간들이 체스판의 말처럼 퍼즐이 돼 움직이는 모습을 위에서 내려찍은 박준범의 ‘퍼즐 2-02’ 등도 꼼꼼히 볼 만하다. (02)2287-3512
박선영 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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