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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에게 분단 들은'고교생 분단 3세대'/"통일은 시간 문제일뿐 당연히 돼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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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에게 분단 들은'고교생 분단 3세대'/"통일은 시간 문제일뿐 당연히 돼야죠"

입력
2007.10.03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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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손을 맞잡고 환하게 웃던 감격의 2차 남북정상회담 장면이 TV를 통해 생생히 전달된 2일, 경기 용인시 한국외대 부속 외국어고에는 뜻 깊은 자리가 마련됐다.

한국전쟁 등 현대사의 상흔을 직접 겪었던 할아버지를 둔 김지윤(17)ㆍ공현지(17)ㆍ유경희(17)양과 박진수(17)군 등 이른바 ‘남북분단 3세대’ 고교 2년생 4명에게 정상회담은 남달랐다. 이들은 한결같이 “정상회담이 통일의 주춧돌을 쌓는 데 기여했으면 좋겠다”고 소망했다.

김 양 등은 평소 분단의 현실이나 통일에 대해 특별한 감회가 없었다. 하지만 얼마 전 할아버지로부터 전해 들은 한국전쟁 당시의 참상은 말 그대로 ‘충격’이었다. 역사담당 송기영(31ㆍ여) 교사는 “명절을 맞아 집안 어른들을 인터뷰하라는 수행평가를 시켰는데, 교과서에서 표면적으로 배웠던 내용이 가까운 어른들의 입을 통해 생생히 전해진 것에 적지 않은 동요가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누구보다 전쟁의 잔혹함, 분단의 아픔을 잘 아는 할아버지 세대의 ‘과거’를 피부로 느꼈던 이들에게 정상회담이 갖는 의미는 각별했다.

박 군은 “정상회담은 1회성에 그쳐서는 안되며 자주 갖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공 양은 “회담 자체는 반대하지 않지만 의제 자체가 지나치게 정치적”이라며 “회담을 통해 남북한의 긴장관계는 일시적으로 완화될 수 있을 것 같다”고 나름의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유 양은 “1차 회담 때에는 반 친구들이 다 같이 모여 TV를 보면서 박수도 쳤다”며 “하지만 이번엔 이벤트 행사다 뭐다 해서 말들이 많은데, 회담을 왜 굳이 해야 하는지 솔직히 모르겠다”며 부정적인 견해를 밝혔다.

그러나 김 양 등은 통일은 반드시 돼야 한다는 데 의견을 함께 했다. 다만 어떤 논의와 과정을 거쳐야 하고, 어떻게 국민적 목소리를 한데 모으는 것에 대해서는 고민해야 한다고 일갈했다.

통일이 될 경우 득과 실도 따져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박 군이 “시간이 문제가 될 뿐 통일은 당연한 것 아니냐”고 운을 떼자, 유 양은 “일반 국민들이 바라는 것과 실제 다뤄지는 의제와는 상당한 괴리가 있는 것 같다”고 냉철한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기성세대에 대한 따끔한 지적도 나왔다. 김 양은 “보수ㆍ진보 단체들이 극명하게 갈려 무조건적인 이념대립을 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고 말했다. 공 양은 “우리가 기성세대가 되면 통일을 위해 어떤 준비가 필요한지에 대한 건전한 토론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김종한 기자 tellme@hk.co.kr

●분단 3세대 아이들 가족사

김지윤(17)양

지윤양은 개성 김씨다. 지윤양의 할아버지(75)는 한국전쟁 당시 홀로 월남했다. 할아버지를 제외한 나머지 가족들은 고향을 떠나기 싫어서 북에 그대로 남았고, 지금은 생사 여부 조차 알지 못한다. 할아버지는 국군, 할아버지의 동생은 북한군에 입대했고, 형제는 숱한 전투에서 생사의 고비를 넘겨가며 서로에게 총을 겨눠야했다.

유경희(17)양

한국전쟁 발발 당시 경희양의 할아버지(74)는 평안남도 강서군에 살던 18살청년이었다. 할아버지는 북측의 주민 동원령에 따라 북한군에 강제 징집된뒤평양까지 밀려 내려왔다가 국군에 붙잡혔다. 이후 거제도 포로수용소

에서 생활하다 송환 심사를 받고는 가족과 함께 남한을 택했다.

공현지(17)양

38선 인근 강원 강릉시에 살던 현지양의 할아버지(78)는 한국전쟁이 터지자 어머니, 형과 함께 북한군의 눈을 피해 산으로, 숲으로다녀야 했다. 그러나 지병을 앓고 있던 어머니와는 끝내 생이별을 해야 했다.

박진수(17)군

전남 신안군의 조용한 섬 임자도에서 살던 진수군의 할아버지(75)도 한국전쟁의 아픈 상처를 가슴에 품고 있다. 섬에 임시로 머물던 북한군이 후퇴하고 국군이 들어왔다. 할아버지의 한 친구가 반가운 나머지‘동무’라는 말을 건네자 갑자기 총성이 울렸다. 북한군 치하에 있었던 임자도에선 당시‘동무’란 표현을 즐겨썼는데, 국군이 이를 오해해 참극이 일어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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