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탁환(39)씨가 장편 <열하 광인> (전2권ㆍ민음사 발행)을 펴냈다. <방각본 살인사건> (2003), <열녀문의 비밀> (2005)에 이은 백탑파(白塔派) 연작 세 번째 이야기다. 서울 종로 탑골 내 백탑(원각사지 10층석탑)을 모임터로 삼았던 백탑파는 북학(北學) 사상을 추종한 조선 중기 신진 지식인 그룹으로, 박지원, 박제가, 이덕무 등이 대표적 인물. 열녀문의> 방각본> 열하>
이들이 정조에게 발탁돼 개혁을 도모하는 과정을 담은 두 전작에 이어, 이번 작품은 후원자였던 정조에게 문체반정이란 된서리를 맞은 백탑파의 위기를 그린다. 살인 사건 이면으로 점차 거대 권력 투쟁이 드러나는 추리소설식 구성은 세 연작의 공통 요소다.
백탑파를 천착하는 이유에 대해 김씨는 “이들이 워낙 글을 잘 쓰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서울대에서 조선시대 고전문학 전공으로 박사과정까지 수료한 김씨는 “박지원의 <열하일기> 를 읽으면서 어쩌면 이렇게 잘 쓸 수 있나 하는 생각에 너무 불행했다”며 “나도 독자를 불행하게 하는 작품을 쓰고 싶었다”고 말했다. 열하일기>
또다른 이유가 있다. 작가의 눈엔 개혁 군주에게 발탁됐지만 제 뜻을 못 펴고 사그라진 백탑파의 모습 위로 현 정부 요직에 대거 진출했던 ‘386세대’의 운명이 겹쳐 보이기 때문이다. “모든 글쓰기는 정치적이고 당파적”이라는 김씨는 “현실에 직언하기보단 소설가답게 비유를 통해 더 깊고 본질적인 것을 말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김탁환의 역사소설은 방대한 자료조사 및 현장취재를 통해 역사의 세세한 풍경까지 되살리는 것으로 정평이 높다. 이번 작품의 참고 문헌만 해도 정치, 문학, 역사, 풍속 연구서 및 사전 등 200권에 이른다.
은사인 김윤식 교수에게 들었던 “공부는 발바닥으로 하는 것”이란 말이 소설가로 데뷔한 1996년 이래로 그의 창작 지침이 됐다. 김씨는 “책을 읽고, 현장을 찾고, 전문가의 견해를 청취하는 작업을 거듭하다보면 세세한 풍경이 머리에 떠오르고, 그 장면을 그대로 써내려 가는 것이 내 소설”이라고 말한다.
그런 점에서 김씨는 자신을 ‘팩션 작가’로 일컫는 것에 고개를 젓는다. “팩션은 역사적 사실과 허구적 상상을 대등하게 결합한다는 뉘앙스가 강한데, 이는 최대한 역사적 사실을 취재하고 그 빈틈을 합리적인 상상력으로 메우는 내 작품엔 맞지 않는 용어”라는 게 작가의 설명이다. 대신 역사적 사실에 소설가의 뜻(義)을 펼쳐서(演) 강조할 부분을 강조한다는 의미를 담은 ‘연의(演義) 작가’라는 말을 선호한다.
김씨는 이번 작품으로 백탑파 연작을 일단락할 계획이다. 그는 “지금까지의 공부로는 2년마다 2권짜리 작품을 내는 것이 버거울 듯 싶다”면서도 “언젠가 파천황적 화풍을 선보였던 신윤복, 천출임에도 해박한 천문 지식으로 관상감에 전격 발탁됐던 김영 등 정조 시대를 풍미한 인물들을 소설로 그려내고 싶다”고 말했다.
이훈성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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