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해 연안의 독립국 그루지야를 미국인들은 '조지아'라고 부른다. 영어식 표기 Georgia를 자신들에게 익숙한 방식대로 읽는 것이다. 이 때문에 언뜻 그루지야는 미국 조지아 주(州)와 이름이 똑같은 나라다. 알파벳부터 서로 다른 탓이지만, 남의 나라 이름을 제멋대로 바꾼 셈이다.
대개 현지 발음에 가깝게 표기하고 읽는 것과 비교된다. 그렇다고 이걸 곧장 '앵글로 색슨의 오만' 으로 규정할 건 아니다. 우리가 미국 영국 독일 등의 호칭을 그대로 쓰는 것과 비슷하게 볼 만하다.
■미얀마 사태 와중에 이슈가 된 '미얀마-버마' 호칭은 사정이 다르다. 국내외 언론은 원래 버마(Burma)이던 영어 국명을 1989년 군사정부가 미얀마(Myanmar)로 변경했으나, 군정을 인정하지 않는 영국과 미국은 계속 버마로 부른다고 설명한다.
우리 정부와 언론도 유엔을 비롯한 국제관행을 좇아 미얀마로 쓰고 있으나, 이번 사태를 계기로 해외 반정부단체 등이 버마를 고수하는 명분이 소개되자 뒤따르는 움직임이 생겼다. 몇몇 학자와 언론인이 미얀마를 버리고 버마를 쓰는가 싶더니, 한 신문은 정식으로 호칭을 바꿨다.
■석연치 않다는 생각에 <위키피디아> 등을 뒤져보았다. 이에 따르면 미얀마의 현지어 공식명칭은 12세기부터 쓴 미얀마(Myanma)다. 물론 현지 비르마(Birma)어 표기에 상응하는 영어 알파벳으로 옮긴 것이다. 위키피디아>
이걸 현지 발음대로 읽으면 바마(Bama, Bamar)가 된다. 아주 다른 말이 되는 게 이상하지만, 영어 표기 차이가 클 뿐 현지 발음은 분간하기 어렵다고 한다.
이 때문에 제국주의시대 영국인들이 버마로 쓰고 읽은 것이 굳어져 1948년 독립 뒤에도 공식 영어명칭은 버마였다. 군정이 여러 도시이름과 함께 미얀마로 영어 국명을 바꾼 것을 정체성 되찾기로 볼 만하다.
■미얀마 반정부세력은 군정의 정통성을 부인한다며 영어 국명 변경을 수용하지 않았다. 투쟁 명분을 널리 알리려는 의도다. 주목할 것은 유엔과 국제사회가 미얀마 명칭을 인정한 것과 달리, 옛 식민종주국 영국과 미국 호주 등 앵글로 색슨 국가들이 버마를 고수하는 점이다.
유럽연합은 '버마/미얀마'로 쓴다. 국제언론은 BBC와 <파이낸셜 타임스> 는 버마, <이코노미스트> 와 <월 스트리트 저널> 은 미얀마 등으로 엇갈린다. 독일 정부는 미얀마, 언론은 비르마 버마 미얀마를 함께 쓴다. 성급하게 모범답안을 고칠 일은 아닌 듯하다. 월> 이코노미스트> 파이낸셜>
강병태 논설위원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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