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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가 무대다] <37> 바이오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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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가 무대다] <37> 바이오트론

입력
2007.10.02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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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기세포. ‘황우석 파문’으로 일반인들에게도 매우 친숙해진 단어다. 하지만 그로 인해 불행하게도 희망이나 기적의 느낌과 함께 ‘거짓말’이라는 부정적 뉘앙스도 함께 가지게 됐다.

온 나라가 줄기세포의 진실을 찾아 혼돈 속을 헤맬 때, 묵묵히 이 줄기세포를 키우는 데 몰두해 온 사람들이 있다. 세계 최초로 ‘맞춤형 줄기세포 배양기’의 상용화에 성공한 바이오트론(대표 장규호)이다.

바이오장비 연구ㆍ제조업체인 바이오트론은 이제 이 기술로 세계를 정복할 참이다. 과장 같지만 의심은 잠시 접어두자. 세포배양 전문가였던 김선종 연구원과 달리 세포배양 기계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 불모의 땅에 뿌린 바이오산업 씨앗

1958년 부친(장익수)이 한일기계(현 한일과학산업)라는 회사를 세웠다. 국내 최초의 원심분리기 제조사인 한일기계는 바이오산업의 출발점인 원심분리기 외길을 걸어오며 국내에선 독보적인 선두 업체로 우뚝 섰다.

우리나라에서 한일 원심분리기를 써보지 않은 바이오 연구소나 병원이 없을 정도다. “공장 바로 옆에 집이 있었어요. 아버진 별다른 취미도 없으실 정도로 공장밖에 모르셨어요.

돌아가시기 전에는 휠체어를 타고도 공장을 둘러보시곤 했습니다.” 장규호(43) 대표는 “그 모습을 보고 자라서 그런지 지금도 이 일이 천직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 홀로서기

기계를 보고 자란 장 대표는 자연스럽게 성균관대 기계설계과에 입학해 공학도가 됐다. 89년 졸업과 함께 아버지 회사에서 일을 시작했다. 기업에 연구ㆍ개발(R&D)이 얼마나 중요한지 이곳에서 배웠다.

바이오트론은 매년 매출액의 20% 이상을 연구개발에 투자하고 있다. 10년간 한일과학산업 R&D팀에 있다가 99년 독립을 감행했다. 자본금 8,000만원. 미생물, 식물세포, 동물세포 등 모든 종류의 생물체를 최적의 조건으로 배양하는 데 사용되는 바이오리액터(생물배양기)를 타깃으로 했다.

바이오ㆍ벤처 붐을 타고 바이오장비 시장 규모는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하지만 오래 지나지 않아 거품이 꺼지면서 어려움이 닥쳐왔다. 수많은 업체가 사멸하면서 수요가 줄었고, 은행들은 추가 대출은 물론 만기연장도 해주려 하지 않았다.

■ 줄기세포에 눈을 뜨다

늘 가슴 속에 품어오던 ‘어려운 길’을 가기로 결심했다. 남들도 다 하는 제품 만으로 승부를 낼 수는 없었다. 줄기세포용 생물배양기 연구는 2005년 산업자원부의 차세대 성장동력사업 프로젝트로 선정되면서 가속이 붙었다.

하지만 줄기세포(생물의 모든 조직으로 분화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미분화 세포)를 배양하는 것은 일반 배양과는 다른 차원의 일이었다. 일반 세포 배양에 비해 극소량을 키우는 탓에 배양기는 작아야 하고, 세포 자체가 목적인 탓에 적은 양이라도 건강하게 자라야 한다.

조직에 붙어 자라는 줄기세포는 일반적인 부유(浮游)식 배양보다 어려운 부착식 배양을 필요로 한다. 줄기세포를 이용한 연구가 머리부터 발끝까지 광범위한 탓에 단순한 배양 시스템으로 쉽게 상용화할 수도 없다.

줄기세포 배양기가 ‘맞춤형’으로 제작된 건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다.

올해 5월 시제품 생산에 성공했다. 줄기세포의 성장 과정을 보여주고 기록하는 이미지 처리 시스템, 세포배양물질이나 성장인자를 전달하는 로봇기능도 탑재했다.

바이오기술(BT)에 정보기술(IT)과 나노기술(NT)까지 융합한 최첨단 제품이었다. 배양기는 앞으로 수요자의 요구에 맞춰 최적화한 상태로 제공된다.

■ 세계로 향하다

장 대표는 올해가 바이오트론의 역사에 커다란 분기점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 지금도 20여 개국에 생물배양기를 수출하며 세계를 뛰고 있지만, 맞춤형 줄기세포 배양기야말로 세계 줄기세포 배양기술의 표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벌써 반응은 뜨겁다. 바이어들은 “줄기세포를 배양하는 기계가 있었느냐”며 놀랐다. 지금까지 줄기세포는 각각의 실험실 차원에서 배양 환경을 만들어 키우는 게 당연했기 때문이다.

5월 이후에만 10여개 국을 돌았고, 20여 곳과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 구매 의향은 물론 벌써 투자 의사까지 밝힌 곳도 있다.

특히 시제품을 시범운용하며 줄기세포를 배양 중인 국내 연구팀에서 그 결과가 나오면 시장에서 큰 주목을 받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우리 배양기를 이용한 연구가 그렇지 않았던 경우보다 나은 결과를 낼 경우 전 세계의 연구진들이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게 장 대표의 설명이다.

줄기세포 배양기는 연구진의 수고를 덜어주는 단순한 바이오장비 하나의 의미를 넘어선다. 줄기세포는 우리 몸과 다른 환경에서 배양되기 때문에 의도하지 않은 속성을 지닌 세포로 바뀌거나 충瑾?성장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었다. 배양하는 사람의 기술에 의존해야 한다는 점에서 재연성이 떨어지는 경우도 많았다.

줄기세포 배양기는 이런 수작업 배양의 한계를 극복하고 전 과정을 자동화해 줄기세포 연구의 발전을 한 단계 끌어올리게 된다. 이는 줄기세포 치료제의 상용화를 앞당기고 치료제나 직접 치료의 비용 또한 낮출 수 있다.

장 대표는 “황 전 교수가 이 배양기를 사용했더라면 역사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 우주로 날다

내년 4월 한국 최초의 우주인 고산씨는 바이오트론이 특별히 제작한 ‘우주 세포배양기’를 갖고 국제우주정거장(ISS)에 머문다. 고씨가 수행할 다양한 과학 임무 가운데 중요한 임무를 배양기가 맡았기 때문. 이 배양기는 우리 연구진이 독도에서 발견한 독도미생물, 줄기세포, 김치 유산균 등을 우주에서 배양할 예정이다.

세포를 떼어내 몸 밖에서 배양하면 중력의 영향을 받아서 바닥에 넓게 깔려 있는 모습이 된다. 반면 무중력 상태에서는 세포가 3차원의 입체 구조로 존재해 몸 속과 매우 흡사한 환경이 조성된다.

생체에 유해한 방사선이 내리쬐는 우주에서 세포를 배양함으로써 다양한 유전자 돌연변이를 확인할 수도 있다. 어쩌면 바이오트론은 세계 정복에 앞서 우주 정복에 성공할지도 모른다.

■ ㈜바이오트론은…

자본금: 9억1,500만원

설립일: 1999년 1월 14일

직원: 42명

주요제품: 바이오리액터(Bioreactor)

연구개발비: 매출액 대비 21%

매출액: 58억원(2006년)

지분구성: 대표이사 65.1%, 산업은행 5.1%, 기타 29.8%

부천=진성훈 기자 bluejin@hk.co.kr

■ 장규호 대표 "아프리카에 온실 만드는 게 꿈"

‘홍익인간(弘益人間ㆍ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다)’. 바이오트론의 사훈이다.

“인류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을 하려는 저희 회사의 목표에 잘 맞는 말이라고 생각해요.” 꼭 사훈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바이오트론의 사업에선 장규호 대표의 인간적인 면모가 느껴진다.

또 하나의 주력 프로젝트인 바이오 에너지 분야에서도 지구온난화에 대한 우려가 스며있다. “이산화탄소를 없애는 능력이 육지식물에 비해 수십 배 탁월한 바다 미세조류를 이용하는 ‘바이오리액터’로 연소가스를 줄임과 동시에 에너지도 얻는 겁니다. 현재 이탈리아의 친환경쓰레기처리장과 시범 프로젝트를 진행 중입니다.”

물론 여기까지라면 바이오산업 자체의 속성 탓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런데 장 대표는 “아프리카에 농작물을 풍족하게 생산할 수 있는 온실을 설치하는 게 꿈”이라며 웃는다.

다소 뜬금 없다는 반응을 읽었는지 “거긴 먹을 게 없어 사람들이 고생하잖아요. 농업과 바이오산업을 결합한다면 못할 것도 없지요”라며 정색을 한다.

줄기세포 배양기 개발로 관련 연구가 진전돼 아픈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 또한 간절하다. 이는 사실 가족사와 관련된 문제이기도 하다.

“어머니가 2003년에 수술 후 뇌경색 등으로 지금도 식물인간 상태로 병원에 누워 계세요. 그 동안 줄기세포 시술도 해보고 그랬는데 시기가 너무 늦은 것 같아 죄스럽죠.”

어려운 점을 묻자 의외의 대답이 돌아온다. “그거 아세요? 저희 회사 제품이 수출이 엄격하게 통제되는 ‘전략물자’입니다. 생물무기를 만드는 데 쓰일 수 있기 때문이죠.

저희 물건을 사려는 쪽은 상당히 까다로운 증빙서류를 갖춰야 하는데, 다른 나라에 비해서도 너무 경직돼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어요.”

부천=진성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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