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기축 통화 '달러'가 속절없이 추락하면서 유로화에 대한 달러 환율이 연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1유로를 사려면 1.42달러 이상을 내야 한다. 불과 5년 전 달러 가치가 유로 가치보다 높았던 것을 감안하면 격세지감이다.
달러 대비 원화 가치도 날로 급등하고 있다. 원ㆍ달러 환율은 환란 이후 10년 만에 최저치까지 밀렸다. 10월 말 미국의 추가 금리인하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어 당분간 '약(弱) 달러' 기조에 제동이 걸리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유럽연합(EU) 가맹국들이 달러화 하락 저지 문제를 공식 언급하면서 환율 갈등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달러 약세 어디까지
8월 중순 1.342달러였던 유로 당 달러 환율은 1일 뉴욕외환시장에서 1.427달러까지 치솟았다. 불과 50일도 안 되는 사이 달러 가치가 6% 이상 급락했다. 문제는 달러 약세에 브레이크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지난달 미국이 금리를 대폭(0.5%포인트) 인하해 달러 약세에 기름을 부은 데 이어 이달 말 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에서도 추가 금리인하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더구나 미 중앙은행의 공격적인 조치에도 불구, 미국 경제의 침체가 장기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높아지면서 달러화 가치 하락을 더욱 부추기는 양상이다. 전문가들은 유로 당 달러 환율이 조만간 1.45달러 선까지 치솟을 수 있다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환율 갈등 조짐
유로지역 13개국 재무장관 모임 의장인 장 클로드 융커 룩셈부르크 총리는 지난달 28일 "유럽 지도자들은 달러 대비 유로화 환율에 대해 크게 우려하고 있다. 강한 달러를 만들기 위한 미국 정부의 의도가 행동으로 나타나기를 희망한다"며 환율 문제를 공식 언급했다.
주목되는 것은 이달 19~21일 열리는 선진 7개국(G7) 회담이다. 융커 의장은 "G7 회담에서 근본적인 경제불균형 문제를 논의할 계획"이라고 밝혔고, 유럽연합(EU) 호아킨 알루미나 통화담당 집행위원도 "환율 불균형 확대로 문제가 심각해지는 상황에서 EU가 계속 수동적일 수만은 없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G7 회의에서 달러 약세 저지를 위한 논의가 진행되더라도 뾰족한 묘수를 기대하긴 쉽지 않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파장으로 미국 경기 침체가 우려되는 상황에서 미국의 중앙은행이 달러 약세를 막기 위해 쓸 수 있는 카드가 별로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한국은행 안병찬 국제국장은 "오히려 달러 약세를 저지하기 위해 유럽 중앙은행이 금리를 인하해야 한다는 역 압박을 받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원화 환율 환란 이후 최저
전세계적 달러 약세에 수출 호황까지 맞물리면서 원화 가치는 연일 치솟고 있다. 원ㆍ달러 환율은 이날 환란 이후 10년 만에 최저 수준(913.70원)까지 떨어졌다. 환율 900선마저 위태로운 실정이다. 모건스탠리는 4분기 환율 전망을 900원으로, HSBC는 905원으로 잡았다.
중소 수출업체들은 비명을 지르고 있다. 환율에 대한 내성이 강해진 대기업과 달리 환리스크를 헤지(회피)할 수 있는 대비가 충분하지 않은 탓이다. 게다가 최근 유가 상승까지 맞물려 채산성이 크게 악화한 상태다.
다행히 전문가들은 환율 하락 압력이 당분간 지속되겠지만, 급격한 추가 하락은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금융연구원 이윤석 연구위원은 "원화가 이미 상당수준 고평가돼 있어 추가적인 환율 하락폭은 크지 않을 것"이라며 "미국 경제 둔화로 대미 수출이 축소될 경우 달러 추가 공급이 줄어들면서 환율 하락의 제약 요인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영태 기자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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