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의 계절’, ‘천고마비의 계절’ 등 가을을 수식하는 말들에 ‘극장을 찾는 계절’을 덧붙여야 할 듯싶다. 막이 오른 2007 서울국제공연예술제와 세계국립극장 페스티벌이 공연예술의 현대성과 고전 읽기를 권유하고 있다. 이 가을 극장의 천정은 관객의 박수소리로 높아지고, 연극이 제공하는 지성과 상상력의 힘이 우리 문화의 역량을 살찌우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공연된 2007 서울국제공연예술제의 연극 부문 작품들의 면모를 살펴보면 개막작 <아라비안 나이트> 를 비롯해 대부분이 현대의 일상적 삶을 신체적 퍼포먼스로 구성해냈다. 아라비안>
현대란 개인성을 획득했지만 여기에 드리운 그늘은 고독과 소외다. 라트비아에서 온 <롱 라이프> 와 스위스의 <미친 밤> , 체코의 <웨이팅 룸> 에 이르기까지 현대인의 삶의 방식이 ‘타인’과 자기 ‘몸’을 감지하는 촉수를 퇴화시키거나 사라지게 할지 모른다는 절박함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웨이팅> 미친> 롱>
인도출신 연출가와 독일 포스트모더니즘 텍스트가 만난 <아라비안 나이트> 는 아파트의 분리된 공간 아래 콘크리트 벽 너머 층층을 밟고선 다른 이의 땀과 음성과 존재감을 좇는다. <롱 라이프> 는 인류공통이 직면한 고령사회 속 긴 여생에 속한 일상의 하루 동안을 페이소스 넘치도록 극사실의 유희로 그려낸다. 롱> 아라비안>
<미친 밤> 역시 현대인이 맞닥뜨린 고독의 문제를 다룬다. 체홉의 희극성과 베케트적인 상황과 언어를 21세기 판으로 변형시킨 듯한 이 연극은 깊은 밤 술집을 떠나지 못하는 취객들의 혼잣말과 권태, 외로움 등을 언어와 리듬의 콘서트로 구성한다. <웨이팅 룸> 은 대합실을 극중 공간으로 삼아 젊은이들의 사랑과 이별, 폭력과 고립감을 역동적인 댄스 시어터 형식으로 만들었다. 웨이팅> 미친>
국내 참가작들의 경향도 마찬가지다. 나무닭움직임연구소의 <체게바라> (황지수 원작, 장소익 연출)는 한 인물을 다루는 전기극 형식이 아니라 미완의 혁명을 일깨우는 ‘중국으로부터 온 서사극적 전보문’에 가깝다. 라틴 아메리카의 전통 리듬과 신화를 빌려온 이 연극은 극장이 노동의 수확물 한줌, 술 한 잔을 함께 나누는 대동놀이의 장소가 되기를 염원했다. 체게바라>
극단 물리의 참가작 <짐> 은 우까시마호 폭침 사건의 희생자를 위한 진혼굿이자 역사의 책임을 환기하는 연극이다(정복근 작, 한태숙 연출). 연출가는 테마에 실린 무거운 중력을 이미지와 신체적 퍼포먼스의 부력으로 넘어서려 시도했다. 짐>
문자 텍스트에서 연출가 중심의 스펙터클로, 다시 배우들의 몸의 현존과 청각적 리듬감으로 이동하면서 설치미술화 되는 무대, 비언어적 퍼포밍 아트와의 혼종을 향하는 현대연극의 한 흐름을 확인해볼 수 있는 기회다. 10월 14일까지.
극작가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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