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평화운동가이자 사상가인 바보새 함석헌(咸錫憲ㆍ1901~1989)과 그의 사상의 토대를 마련해준 스승 다석 유영모(柳永模ㆍ1890~1981)의 사상을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전파하는 학술재단이 출범한다. 5일 창립식을 여는 재단법인 씨알의 상임이사 박재순(57) 목사는 “두 분이 자신의 몸과 영혼을 옹글게 가꾸면서 완성한 씨알철학을 체계적으로 알리겠다”고 말했다.
서구의 기독교사상과 동양사상을 창조적으로 혼융한 ‘동서문명의 통합사상’인 두 사람의 사상은 그 광대무변함 때문에 한 마디로 요약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 박 목사는 “ 민중을 ‘씨알’ 로 보고 씨알을 섬기는 ‘씨알철학’이야말로 두 분 사상을 묶어낼 수 있는 핵심개념”이라고 말했다.
함석헌의 ‘씨알철학’ 은 그의 역저 <뜻으로 본 한국역사> 에 잘 나타나있다. 함석헌은 이 책에서 우리역사를 고난의 역사로 파악하면서도 역사의 주인은 민중이고 해방이후 민중이 점차 각성해가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1970년 창간, 유신독재에 저항했던 잡지의 이름이 <씨알의 소리> 라는 사실은 상징적이다. 씨알의> 뜻으로>
함석헌보다 유영모의 대중적 인지도는 다소 떨어지지만 박 목사는 “함석헌 선생은 일제시대 오산학교 시절 11살 위의 유영모 선생을 만난 뒤 1960년대 견해차이로 각자의 길을 갈 때까지 그를 정신적 스승으로 모셨다”고 말했다.
그는 “유 선생이 YMCA에서 성경을 강의하던 1947년부터 1960년까지 함 선생은 하루도 빠짐없이 강의를 들었으니 ‘씨알철학’ 의 저작권은 유 선생도 공유하고 있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망국의 원인을 유교의 양반사상이라고 파악했던 유영모는 <대학(大學)> 의 ‘친민(親民)’ 사상을 엄중히 여기며 “씨알의 말도 어버이 대하듯 여기는 것이 큰 길”이라는 신념을 평생 유지했다. 대학(大學)>
실제로 유영모는 45세 때 경기 고양의 농촌마을로 들어가 91세로 숨을 거둘 때까지 땀 흘려 농사를 지으며 일일일식(一日一食)의 금욕생활을 실천했다. 굳이 차이를 들자면 함석헌의 사상이 좀더 현실적, 참여적 성격이 강하다면 유영모는 종교적ㆍ철학적으로 파고들어갔다는 것 정도다.
재단은 씨알철학을 전파하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준비하고 있다. 함석헌의 사상을 담은 <함석헌 전집> (20권)을 수정ㆍ보완한 증보판(35권)출간과 유영모의 사상을 정리한 <다석전집> 의 출간이 일차적인 목표다. 다석전집> 함석헌>
우리말 철학하기를 실천했던 유영모의 사상의 이해를 돕기위해 <다석용어전집> 도 펴낼 계획이다. 현장에서 민중을 섬기며 씨알정신을 실천하는 활동가들을 대상으로 매년 말 씨알상도 시상할 예정. 다석용어전집>
씨알재단에는 두 사람의 정신을 기리는 종교ㆍ문화계 인사들이 대거 참여한다. 이사에 다석학회 회장인 정양모신부, 고문에 서영훈 전 적십자사 총재, 한승헌 전 감사원장, 자문위원에 박노자 오슬로대 한국학교수, 이기상 한국외대 철학과 교수 등이다.
박 목사는 “체계가 잡혀있지 않다는 이유로 두 분의 사상이 강단에서 배척당한 것이 늘 아쉬웠다”며 “재단출범을 계기로 민중적, 민족적, 세계평화적인 씨알철학을 계승ㆍ발전시키는데 진력하겠다”고 말했다.
이왕구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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