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 신형철씨는 이렇게 말했다. “오늘날 문단의 불문율 중 하나는 ‘김애란을 사랑하라’는 명령이다. 모두가 그녀를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2000년대 소설계의 ‘만인의 연인’ 김애란(27)씨가 두 번째 소설집 <침이 고인다> (문학과지성사 발행)을 냈다. 2005년 초겨울에 출간한, 그해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작을 표제작으로 한 첫 소설집 <달려라, 아비> 이후 해가 2번을 채 돌기도 전에 8편의 단편을 써서 묶었다. 한 계절에 한 편 꼴이니 문학 계간지의 청탁이 끊이지 않았던 셈이다. 달려라,> 침이>
대개 한두 어절의 단출한 제목을 단 단편들은 ‘김애란표 소설’이라 부를 만한 특질, 산뜻한 상상력과 참신한 비유, 재치 넘치는 언어 감각을 고스란히 유지하고 있다.
신림동 고시촌으로 거처를 옮긴 9급 공무원 시험 ‘장수생’ 언니에게 베개를 선물하러 가는 ‘나’는 휴대 전화가 진동할 때마다 “휴대 전화 크기만큼 작아진 언니가 내 호주머니 안에서 자꾸 울어대는 것 같다”고 느낀다(‘기도’).
외떨어진 섬 ‘플라이데이터리코더’에서 신경질적인 할아버지와 함께 사는 아이에게 “할아버지와의 동거란 세 명의 생부(生父)를 데리고 사는 것만큼 피곤한 일”이다(‘플라이데이터리코더’). 이 80년생 작가를 ‘사랑할 수 밖에 없도록’ 만드는 감각적 문장들은 작품집 도처에서 투명한 빛을 내고 있다.
하지만 김씨의 소설은 한결 차분해졌다. 그것은 작가의 문학적 상상력이 가상이나 초월의 영역을 부유하는 것이 아닌, 현실에 단단히 발붙인 자리에서 발현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첫 소설집의 주요 작품들이 ‘결손 가족’ 아동의 성장소설 형식을 띠면서 ‘아버지’의 부재를 기발한 판타지로 메우는 작업을 수행했다면, 이번 작품들은 개인, 특히 동시대 젊은 세대의 궁핍한 현실, 단절된 관계를 직시하며 한층 짙어진 사회성을 표출한다.
해설을 쓴 평론가 이광호씨의 지적대로 신림동 고시원(‘기도’), 4인용 독서실(‘자오선을 지나갈 때’), 반지하 방(‘도도한 생활’) 등 작품마다 등장하는 좁고 누추한 방(房)은 작품 속 젊은 세대들이 처한 사회적 상황을 확인시켜주는 공간이다. ‘성탄특선’의 젊은 연인은 잠시 동안 함께 몸을 누일 공간(모텔)조차 얻지 못해 성탄 전야를 꼬박 헤맨다. 제 집에 받아들인 후배와의 동거가 견딜 수 없이 불편해져 결국 그를 내쫓아낸 표제작의 주인공에게 방은 “어서, 고독해지고 싶”은 욕망과 소통의 욕구가 상존하는 공간이다.
방백(傍白)적인 톤이 이채로운 ‘칼자국’은 화자에게 “우는 여자도, 화장하는 여자도, 순종하는 여자도 아닌 칼을 쥔 여자”로 기억되는 어머니에 관한 회상이다.
20여 년간 국숫집을 운영하며 무능력한 아버지를 대신해 생계를 꾸렸던 어머니의 삶과 죽음에서 모성의 강인함에 대한 작가의 깊은 신뢰를 다시금 확인할 수 있다. “나는 어머니가 해주는 음식과 함께 그 재료에 난 칼자국도 함께 삼켰다. 어두운 내 몸속에는 실로 무수한 칼자국이 새겨져 있다.”(151쪽)
이훈성 기자 hs0213@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