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림 / 창비끊어진 길과 '도보 월경' 우리 정서·가락의 진경
내일부터 열리는 남북정상회담에 노무현 대통령이 군사분계선을 걸어서 건너기로 했다 한다. 휴전선 도보 월경이 끊어진 남북의 길을 잇는 상징적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번 회담의 특별수행원으로 방북하는 신경림(72) 시인의 시집 <길> (1990)에 ‘끊어진 철길’이란 시가 수록돼 있다. 길>
‘끊어진 철길이 동네 앞을 지나고/ 금강산 가는 길이라는 푯말이 붙은/ 민통선 안 양지리에 사는 농사꾼 이철웅 씨는/ 틈틈이 남방한계선 근처까지 가서/ 나무에서 자연꿀 따는 것이 재미다/ 사이다병이나 맥주병에 넣어두었다가/ 네댓 병 모이면 서울로 가지고 올라간다/ 그는 친지들에게 꿀을 나누어주며 말한다/ 이게 남쪽벌 북쪽벌 함께 만든 꿀일세/ 벌한테서 배우세 벌한테서 본뜨세’.
하지만 다음 시구에서 곧바로, 이철웅 씨는 휴전선 근처 자연꿀 따기를 그만두어야겠다 생각한다. ‘금강산 가는 길이라는 푯말이 붙은 인근/ 버렸던 땅값 오르리라며 자식들 신바람났지만/ 통일도 돈 가지고 하는 놀음인 것이 그는 슬프다/ 그에게서는 금강산 가는 철길뿐 아니라/ 서울 가는 버스길도 이제 끊겼다’. 통일은 돈놀음이 아니라 길을 잇는 것이다.
2004년에 나온 <신경림 시전집> 은 <길> 을 비롯해, 한국 현대시의 물줄기를 바꿔놓은 그의 첫 시집 <농무> (1975) 이후의 시집들을 모두 수록하고 있다. 농무> 길> 신경림>
곁에 두고, 어디나를 언제고 펼쳐 읽어도 그의 치열하고도 친숙한 시어가 잠들었던 정신을 깨운다. ‘아무렇게나 살아갈 것인가/ 눈 오는 밤에/ 나는 잠이 오지 않는다’(‘산읍일지’),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가난한 사랑 노래’). 그가 이번 방북길에서는 어떤 시를 수확하고 올지 기다려진다.
하종오 기자 jo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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