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공식적으론 남북정상회담을 지지하고 환영한다는 입장이지만, 내부적으론 긴장과 경계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유도한다는 기본 입장은 우리와 같다. 그러나 구체적인 의도나 정책 우선순위 등에서는 노무현 정부와 적지않은 시각차를 보이고 있다.
가장 우려하는 점은 북한의 완전한 핵폐기 여부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노 대통령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선뜻 대규모 대북지원을 약속하거나, 평화체제 문제와 관련해 일방적 선언을 하는 상황이다. 이 경우 모든 대북 유화책이 북 핵 해결을 위한 지렛대로 수렴되기를 바라는 부시 정부의 계산은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
미국 외교 소식통들이 “북핵 해결이 최우선 관심사인 부시 정부 입장에서는 이번 회담이 약이 될 수도, 독이 될 수도 있다”고 말하는 것도 이런 사정과 무관치 않다.
물론 부시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하노이 한미정상회담에서 “김 위원장과 한국전 종전을 선언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고, 9월 초 시드니 정상회담에선 “북한이 핵무기를 폐기하면 평화협정을 김 위원장과 공동 서명할 수 있다”며 진일보한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의 이 같은 입장은 어디까지나 북 핵 해결을 최우선 전제로 한 것으로, 이에 대한 보장 없이 노 대통령이 먼저 ‘치고 나가는’ 상황은 바라지 않고 있다.
부시 대통령이 최근 북한과 시리아간 핵거래설이 난무하는 상황에서 북한을 ‘야만 정권’으로 규정하고, 무기확산을 경고한 것은 남북정상회담에서 과속을 방지하기 위한 의도된 발언일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실제로 미국 내 한반도 전문가들은 “부시 대통령의 잇단 경고 발언은 북한을 겨냥한 것이지만, 다분히 노 대통령을 우회적으로 겨냥한 것일 수도 있다”며 “한마디로 김 위원장의 완전한 북 핵 폐기 선언이 없는 마당에 노 대통령이 과속해선 안 된다는 메시지가 담긴 것”이라고 풀이했다.
낙관과 기대도 적지 않다. 브루스 클링너 헤리티지재단 연구원은 “이번 회담은 북한의 군사적 위협을 축소하고 지역 안정을 강화하는 국제사회 목표를 충족하는 데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며 기대감을 감추지 않았다. 다만 “김정일 정권은 한국 대선에 영향을 줌으로써 친북 정권이 들어설 수 있도록 돕고 싶겠지만, 한국인들이 이미 그 내용을 대부분 알고 있어 그들이 원하는 대로는 잘 되지 않을 것”이라며 국내 대선 등에 미칠 정치적 파장을 경계했다.
스콧 스나이더 아시아재단 선임연구원은 “국제적으로 주목받는 이번 정상회담에서 김 위원장이 공개적으로 핵 폐기 의지를 강하게 천명한다면 성공적 회담으로 평가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뉴욕=장인철 특파원 icj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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