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에 두 차례나 참가했던 프랑스의 한 노병이 수년 전 노환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자신의 유골을 전쟁 당시 격전지였던 강원 양구군의 한 고지에 뿌려달라는 유언을 남긴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사연의 주인공은 참전용사 모리스 나바르씨. 2004년 79세로 숨지기 전 나바르씨는 “유골을 전우들이 잠들어 있는 한국의 931고지에 뿌려달라”고 유언했다. 931고지는 851, 894고지와 함께 강원 양구군 사태리에 있다. 전쟁 당시 동부 전선의 요충지로 치열한 쟁탈전이 벌어져 북한군 2만5,000여명과 유엔군 3,700여명이 죽거나 다쳐 ‘단장(斷腸)의 능선’으로 알려져 있다.
육군에 따르면 나바르씨는 1951년 2월 일등병으로 참전, 미 2사단에 배속돼 그 해 9월13일부터 23일간 철의 삼각지대(철원_김화_평강지역)에서 전개된 유엔군 대공세에 투입됐다. 이 기간 931고지를 중심으로 한 단장의 능선에는 23일간 30만발의 포탄이 쏟아져 지형 자체가 바뀔 정도의 격전이 벌어졌다.
그 해 10월 12일 나바르씨는 야간 공격에 참가해 마지막 저항선인 851고지에서 유탄을 맞고 부상했다. 52년 2월 치료를 위해 프랑스로 돌아간 그는 이듬해 3월 다시 참전해 여러 전투에서 싸우다가 53년 10월 하사로 진급해 귀국했다.
유족들은 나바르씨의 유언을 주한 프랑스대사관에 전해 도움을 청했고 육군은 9월18일 단장의 능선에서 거행된 ‘프랑스 참전 기념비’ 제막식(사진) 때 고인의 유골을 뿌리려다 비 때문에 연기했다. 육군은 고인의 유골을 21사단이 보관하고 있으며 조만간 유언대로 풍장(風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범수 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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