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조정 등으로 갑자기 실직해 새 일자리를 구해야 하는 구직자들은 막막하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무엇을 해야 할지 답답하기만 하다. 이럴 때 든든한 지원군이 ‘취업 컨설턴트’다. 취업 컨설턴트는 구직자에게 취업 정보는 물론 이력서 작성 등 구직기술을 알려주는 일자리 길라잡이다.
실직의 늪에서 절망하는 이들의 사연을 들어주고 아픔을 나누는 ‘심리 치료사’이기도 하다. 27일 서울 여의도에 있는 노사공동재취업지원센터의 ‘컨설턴트 4인방’ 황영희(35) 안선진(34) 홍제희(32) 민기정(31)씨가 상담 과정에서 겪고 느낀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 놓았다.
구직자 '화'부터 풀어줘야
황영희(경력 1년)- 재취업센터에 오는 사람들의 어깨는 한결같이 축 처져 있다. 실직자로 전락한 것에 대한 실망과 일자리 찾기가 어려워 내뱉는 한숨으로 얼굴들이 잔뜩 굳어 있다. 구직자들에게 ‘다시 할 수 있다’는 동기 부여를 하는 게 가장 어렵다.
홍제희(경력 5년)- 재취업센터를 일자리를 알선해 주는 곳으로만 아는 사람들이 많다. 센터는 물고기를 잡아주는 곳이 아니라 잡는 방법을 알려주는 곳이다. 취업 정보 몇 개 보다 중요한 건 이력서 작성법이나 면접 요령 같은 구직기술을 배우는 것이다.
안선진(경력 9년)- 나이 먹은 티를 내야 하는 게 어렵다. 상담 받는 구직자에게 ‘먹을 만큼 먹었다’며 나이를 부풀린 적이 많다. 중ㆍ고령 구직자들은 자신보다 어린 컨설턴트가 자기의 감정을 이해할 수 없을 거라 생각하고, 어린 사람에게 자신의 어려움을 토로하는 것에 대해 많이 자존심 상해 한다.
민기정(경력 1년)- 구직자들의 신세한탄을 잘 들어주는 것도 상담사의 중요한 일이다. 특히 권고 사직 등 회사에 떼밀려 나온 분들은 상담 내내 “몸 바쳐 일한 회사에서 배신 당했다”며 억울해 한다. 안타까운 마음에 다 들어준다. 응어리 진 화부터 풀어야 재취업을 준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백수 탈출 비법을 한 가지만 든다면
안- 마음은 느긋하게 몸은 바쁘게 움직이라고 주문하고 싶다. 여유를 갖고 장기적으로 바라봐야 한다. 조급하면 아무것도 안 된다. 가고 싶은 일자리는 어딘가에 반드시 있다. ‘백수’가 된 지 7년 된 사람도 재취업에 성공했다. 구직 기간을 ‘살아온 인생을 찬찬히 되돌아 볼 수 있는 축복의 시간’으로 생각하는 발상의 전환도 권하고 싶다.
황-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 것도 중요하다. 구직자 스스로 ‘난 가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게 중요하다. 낡은 바이올린의 주인이 그 바이올린을 가치 있다고 생각해 소중히 다루면 경매시장에서 높은 값을 받을 수 있다. 그렇지 않고 ‘그냥 낡은 악기’라고 여기면 그 바이올린이 갈 곳은 쓰레기통밖에 없다.
민- 변화에 민감하게 대응해야 한다. “내가 왕년에”라는 생각은 절대 금물이다. 60대 초반의 구직자가 있다. 자신의 경력을 내세워 기획 분야만 고집했다. 계속 안 되고 있다. 자신의 상황을 받아 들이고 산업동향 등 고용시장 변화에도 잘 대처해야 한다.
홍- 전략적인 구직 활동은 재취업 성공의 지름길이다. 구직자 자신의 입장만 생각하지 말고 기업이 어떤 인재상을 요구하는지를 먼저 파악해 거기에 맞게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 “이력서를 몇 군데 뿌렸는데 단 한 건의 면접제의도 못 받았다”, “면접만 가면 떨어진다”고 하소연하는 구직자들이 많다. 남 탓할 게 아니다. 들어가고 싶은 기업에 대한 분석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기업도 전직 프로그램 관심 가져야
민- 최근 들어 2년간 계약직으로 일한 뒤 정규직이 못 되고 계약해지를 당한 구직자들이 센터를 부쩍 많이 찾는다. 비정규직 보호법의 취지는 좋지만 부작용이 많은 것 같다. 전자업체 대리점에서 계약직 경리로 일하던 분이 있다. 본사에서 비정규직법을 이유로 계약해지 했다. 지금은 그 대리점에서 아르바이트로 일하고 있다. 같은 일을 하지만 임금 등 근로조건은 더 열악해졌다. 억울한 피해자가 안 나오도록 정부의 대책이 절실하다.
홍- 전직(轉職) 프로그램에 대한 기업의 관심이 절실하다. 일부 대기업을 제외하면 국내 기업들의 전직 프로그램이 매우 미흡하다. 위로금 조금 더 주고 구조조정 하는 것 보다 해고 전에 체계적인 전직 훈련의 기회를 마련해 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이마저도 힘들면 우리 센터 같은 재취업기관을 소개해 주는 배려가 있어야 한다.
노조도 전직 프로그램을 사측의 인력 감축을 위한 수단으로만 볼 게 아니라, 단체협상의 주요 요구사항으로 내세우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황- 40대 이상이 갈 만한 일자리가 없다. 삼성전자에서 30년 동안 일한 사람도 갈만한 곳이 없이 실업자 신세일 정도다. 기업은 이들을 위한 직무를 개발하고, 정부는 관련 지원책을 마련해 일자리 창출에 적극 나서야 한다. 40대 이상의 숙련된 노하우가 사장되면 국가로서도 큰 손해다.
안- 정부가 실업자에게 지원하는 직업 훈련이 좀 더 유연해져야 한다. 지금은 훈련기관에 등록하면 6개월에서 1년간 매일 아침 9시에서 오후 6시까지 관련 교육을 받아야 한다. 구직자들은 “훈련 기간이 너무 길어 일자리를 구할 시간이 없다”고 불만이다. 교육 마치고 자격증만 달랑 따봐야 취업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단기 훈련과 야간 과정을 더 많이 만들어 일하면서 훈련도 받을 수 있게 해야 한다.
김일환 기자 kevin@hk.co.kr공동기획 노동부/후원 신한은행
■ 취업 컨설턴트가 되려면
고용 관련 시장이 커지면서 취업 컨설턴트에 대한 수요도 꾸준히 늘고 있다.
취업 컨설턴트가 되기 위해 필요한 자격증은 따로 없다. 민간 취업 업체 등에서 컨설턴트 채용 공고를 낼 때 지원하면 된다. 다양한 심리 프로그램을 활용해 구직자의 적성, 역량 등을 진단하고 분석하는 능력이 중요하므로 심리학이나 통계학 전공자에게 유리하다. 특히 기업의 인사ㆍ채용 분야 경력을 가진 꼼꼼한 성격의 여성들에게 권할 만 한 직업이다.
한국노총과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운영하는 노사공동재취업지원센터에서는 지난해부터 컨설턴트를 양성하고 있다. 3개월 과정으로 이력서 작성 기술과 심리 검사 분석 등 다양한 분야를 배운다. 지난해 10명이 수료해 8명이 컨설턴트가 됐고, 올 해는 20명이 교육 중이다. 국내에는 약 1만명의 취업 컨설턴트가 있고, 연봉은 2,400만~5,000만원 정도다.
김일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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