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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미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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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미얀마

입력
2007.09.29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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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 사후 불교를 세계에 널리 퍼뜨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은 기원전 3세기 인도 마우리아 왕국의 아쇼카 왕이었다. 그는 잔인한 정복전쟁의 영웅이었으나 살육의 참혹함을 깨닫고 불교에 귀의한다.

이어 불교를 국교로 삼아 통치이념화하면서 여러 나라에 적극적으로 포교활동을 한다. 아쇼카 왕은 아홉 차례나 선교사를 파견했다.

여덟 번째로 파견한 소나 스님은 웃따라 스님과 함께 '황금의 땅(수완나부미)'으로 일컬어지던 현재의 미얀마에 도착했다. 미얀마에서 불교가 시작된 것은 이때부터이다.

■전설에 따르면 당시 미얀마에서는 궁에서 사내아이가 태어나기만 하면 바다에 있는 공포의 여신이 죽여 버렸다고 한다. 그래서 두 스님이 나타나자 사람들은 공포의 여신의 친구라고 여겨 무장을 하고 달려들었다.

두 스님은 "우리는 여신의 친구가 아니고 불법을 열심히 수행하는 수행자입니다"라고 했다. 그때 공포의 여신이 부하들을 데리고 나타났다. 그러자 스님은 이들의 두 배나 되는 수의 신을 만들어냈다. 그러자 여신은 '이 나라는 필시 이 사람들의 소유이구나'하고 생각하고는 하늘로 올라갔다.

■두 스님은 그 자리에 성을 만들고 〈범망경(梵網經)〉을 설했다. 이로써 6만 명이 불법을 믿기 시작했고 수천 명이 출가를 했다고 한다.

믿기는 어렵지만 또 다른 전설에 따르면 붓다 자신이 생전에 미얀마 이곳저곳을 돌며 설법했다고도 한다(송위지 서울보건대 교수의 테라바바다(상좌부) 불교 설명 중에서). 황금빛 가사를 걸친 소나와 웃따라의 제자들이 군사정권에 대항해 들고 일어났다.

전국민의 90%가 불교도인 나라에서 승려들의 권위는 거의 절대적이지만 군사정권의 탄압이 어디까지 옥죄어 들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생각해 보면 참 안타깝다. 미얀마는 우리처럼 근대 이전에 훌륭한 여러 왕조의 전통이 있었고, 외세(영국)의 식민통치(1885~1948)를 겪었고, 똑같이 군사독재를 경험했다.

남ㆍ북한의 3배나 되는 땅덩어리에 3모작이 가능하고 지하자원이 풍부하며 인구도 5,000만 명으로 만만찮은 나라다. 1960년대 중반까지도 우리보다 소득이 높았다. 그러나 군사독재가 45년째 계속되면서 1인당 소득은 1,800달러(작년 추정치)에 불과할 정도로 민생은 도탄에 빠졌다.

민주화 운동 지도자 아웅산 수치 여사는 12년째 가택연금 중이다. 일찍이 유엔 사무총장(우탄트ㆍ재임 1962~71)까지 배출한 미얀마에 봄은 언제나 찾아올까.

이광일 논설위원 ki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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