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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B는 이제 '인생의 동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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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B는 이제 '인생의 동반자'

입력
2007.09.29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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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생 손녀가 중국에 유학 갔는데 노트북을 살까? 프로그램은 뭘 깔지?”

“새 아파트로 이사를 왔는데 거실엔 무슨 화랑의 어떤 그림을 사서 거는 게 좋을까요?” “유럽 여행 중인데 여권을 잃어버렸어요. 국내에서 좀 처리해줄래요?”

일상에서 맞닥뜨리는 크고 작은 문제와 선택의 기로. 당신은 누구에게 물어 해결하는가, 가족 혹은 친구, 직장 동료? 전문성이 떨어지니 진심어린 조언정도는 가능하겠지만 결국 최종 결정은 당신의 몫일 터.

금융자산 5억원(혹은 10억원) 이상을 은행에 맡긴 부자들은 일이 생기면 PB에게 부탁한다. 투자는 기본이고 부동산 세무 상속 등 돈에 얽힌 문제뿐 아니라 생활의 잡다한 분쟁과 고민, 심지어 자녀의 혼사까지.

‘프라이빗뱅커(Private Banker)’를 뜻하는 PB가 실제론 ‘문제해결사(Problem-solving Broker)’로 통하는 셈이다. PB들은 “고객들이 우리를 만능 해결사로 여기는 게 사실”이라고 했다.

PB의 하루를 들여다보면 보다 극명해진다. 국내외 시장 분석과 수익률을 점검하는 서너 시간을 제외한 나머지는 오롯이 고객을 위해 존재한다. 매일 고객전화 30여건을 통해 접수된 문제에 대한 정보수집 현장답사 상담 결정을 하고, 일과 전후에 즐기는 취미생활 역시 실은 고객의 취미에 맞추기 위한 업무의 연장이다.

도대체 왜 부자들은 피붙이도 아닌 담당 PB에게 속내를 털어놓고 모든 문제를 맡길까. 국민은행 아시아선수촌PB센터 이정걸 팀장은 “PB는 고객의 숟가락 숫자까지 세고 있을 정도라 누구보다 고객의 가려운 곳을 긁어줄 수 있다”고 했다. 강지현 하나은행 PB는 “투자든 인간관계든 편한 사람에게 부탁하기 마련인데 아무래도 많은 돈 때문에 친구나 의지할 데가 적은 부자들에게 PB는 믿을 수 있는 존재”라고 귀띔했다.

한마디로 “수익이 아니라 신뢰를 판다”는 얘기다. PB가 단순한 부의 관리(Wealth Management)를 넘어 ‘인생전반의 보호’(Life Total Care) 개념으로 진화하고 있는 것. 신한은행 PB서울파이낸스센터 김형태 팀장은 “고객의 수익률을 올려준 것보다 고객 아들의 맞선을 주선해 결혼을 성사시킨 일이 더 뿌듯하다”고 할 정도다.

고객의 다양한 요구를 해결하기 위해 PB들은 ‘슈퍼맨’을 꿈꾼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PB가 되기 위해 금융 지식은 필수. 여기에 골프도 쳐야 하고 와인도 대화할 수준정도는 되어야 한다. 그림이나 오페라에 대한 지식도 있어야 하고, 필요하면 승마도 배워야 한다. 부자들이 먹고, 부자들이 마시고, 부자들이 즐기는 것은 뭐든지 다 해야(최소한 알아야) 하는 것이다. 산악자전거 전문가인 장문성 국민은행 강남PB센터 PB팀장은 “철인 3종 경기에 출전하는 고객과 함께 나가기 위해 수영실력을 보충하고 있다”고 전했다.

PB들의 고객 따라잡기는 공통의 관심사에 대한 대화와 동행이 ‘신뢰의 묘약’이기 때문이다. 흔히 남을 잘 믿지 못해 마음을 잘 열지 않는 부자들과 취미를 나누다 보면 자연스레 근심과 고민을 알게 되고, PB들이 이를 해결해주면서 관계가 돈독해지고 다른 부탁도 하게 된다는 것. 우리은행 투체어스강남센터 김태성 PB팀장은 “잘 모르거나 황당하다 싶을 정도의 요청도 전문가나 은행 내 관련부서 등 모든 루트를 동원해 적극적으로 해결을 돕는다”고 말했다.

PB는 ‘은행의 꽃’으로 불린다. 실적에 따라 보수도 많다. 자산 불리는 일은 기본이고 생활의 골칫거리까지 척척 해결해주니 그럴 만도 하다.

하지만 스트레스도 만만치 않다. 자기가 부자도 아닌데, 부자를 따라 하는게 어디 쉬운 일이랴. 한 은행관계자는 “PB를 지망했다가 적성에 맞지 않아 중도탈락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PB(Private Banker)의 유래

11세기 십자군 원정이후 귀족의 재산관리인이 시초. 영세중립국 스위스가 1차 대전 후 PB의 중심지로 떠올랐고, 1977년 시티은행이 PB(Private Banking)라는 용어 처음 사용. 국내 은행은 90년대 중반 도입. 부자 고객을 상대로 은행업무는 물론 세무 법률상담 부동산 및 증권정보 등 모든 서비스를 제공한다.

고찬유기자 jutd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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