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년째 철권 통치를 이어가고 있는 미얀마의 독재자 탄쉐(74) 장군은 철저한 언론 통제로 상당 부분 베일에 가려져 있지만 미신을 지나치게 믿는 등 특이한 성격의 소유자인 것은 확실하다.
2005년 11월 극비리에 수도를 양곤에서 북쪽의 정글 속에 위치한 네피도로 옮긴 이유도 점성가의 말만 믿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또 쉐 장군의 아내가 뱀과 말라리아 모기가 가득한 밀림을 싫어해 수도의 일부 기능은 과거 영국 식민지 시절 여름 수도였던 마이묘로 옮길 것이라는 소문도 나돌고있다.
오토바이를 탄 암살자에게 죽임을 당할지 모른다는 불안 때문에 수년 전부터 양곤지역에서 일반인의 오토바이 탑승을 금지하기까지 했다. 지난해 11월에는 초호화판으로 치러진 딸의 결혼식 영상이 인터넷에 올려져 극빈 상태인 국민들의 공분을 사기도 했다. 당시 딸과 사위에게 전해진 선물의 값어치가 무려 5,000만 달러에 이르렀다.
쉐 장군은 장암으로 추정되는 지병이 심해 싱가포르에서 치료를 받은 적이 있으며 근년 들어 공식석상에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군부 내부의 권력다툼도 예상된다고 미얀마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쉐 장군은 식민지 통치 시절인 1933년 2월에 태어났으며 우체국 직원으로 일하다 53년 군에 입대했다. 승승장구하며 군 최고위 자리까지 오른 쉐 장군은 92년 건강 상의 이유로 물러난 소우 마웅 장군의 뒤를 이어 군사정부의 최고지도자로 부상했다.
국가평화발전평의회(SPDC) 의장 직에 오른 쉐 장군은 취임 직후 “장기간 권력을 잡고 있지 않겠다”고 밝혀 한때 시민정부가 들어설 것이라는 국내외 기대가 컸지만 이는 단지 수사에 지나지 않았다. 88년 8월 8일에 발생한 ‘8888 민주화 시위’를 강제로 진압해 3,000여명의 희생자를 낸 데 주도적 역할을 한 그는 2003년 민주화 인사인 아웅산 수치 여사를 세 번째로 가택 연금을 하는 등 철권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있다.
최진주 기자 parisco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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