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림받은 노인들을 돌봐 달라고 소리치는 화자도, 슬픈 배경음악도 없다. 대신 고장 난 TV와 낡은 액자, 화병 등 갖가지 소품이 가득찬 방에서 코를 골며 자다 방귀를 뀌고, 술과 안주를 먹고 마시고 숨바꼭질을 하다 낮잠을 자는 노인들이 있을 뿐이다.
무겁기만 할 것 같았던 무의탁 노인 다섯 명의 일상은 밝고, 때로 우스꽝스럽게까지 그려지지만 노인문제라는 메시지는 그 어떤 슬픈 다큐멘터리보다 강렬하다.
2007 서울국제공연예술제(SPAF) 해외 참가작 중 최고의 화제작인 라트비아 뉴 리가 극단의 연극 <롱 라이프> 의 26일 첫 공연은 관객들에게 큰 웃음 뒤에 답답하고 묵직한 울림을 진하게 전해줬다. 롱>
SPAF 참가작 중 가장 먼저 3회 전회 매진을 기록한 <롱 라이프> 는 공산주의 붕괴로 오갈 곳이 없어진 공동주택 무의탁 노인 5명의 관찰기다. 롱>
TV상자 같은 네모 반듯한 세트의 문을 뜯어내면 관객은 관음증에라도 걸린 듯 이들의 일상을 훔쳐보게 된다. 대사는 거의 없지만 노인들의 행동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인터미션 없는 100분은 금세 지나간다.
정치 문제는 차치하고서라도 단지 나이를 먹었다는 이유만으로 옷을 입는 것도, 몸을 씻는 것도 엄청난 수고를 요하는 일이기에 말 한마디 없이도 이들의 삶은 충분히 고통스럽고 극적이다. 감옥 같은 공동주택에서 노인들의 벗이라곤 실제 공동주택 거주 노인들의 유품으로 구성했다는 소품들 뿐이다.
'유럽의 천재 연출가' 알비스 헤르마니스는 평범한 일상에 대한 세심한 관찰이 얼마나 위대한 예술작품을 낳을 수 있는가를 입증해 보였다. 커튼콜 때 분장을 지우고 생기 있고 아름다운 얼굴을 드러낸 젊은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력은 연극의 성가를 더욱 높였다.
김소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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