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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번째 영화 행복 개봉 앞둔 허진호 감독 "완벽한 사랑이란 강박증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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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번째 영화 행복 개봉 앞둔 허진호 감독 "완벽한 사랑이란 강박증 아닐까요"

입력
2007.09.29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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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없으면 못 살 것 같더니, 이젠 너 때문에 미치겠어."(영화 <행복> 중 남자의 대사)

셋 중 하나다. 이미 한 말이거나, 하고 싶은 말이거나, 언젠가 하게 될 말이다. 시간이 흐르면, 사랑도 부식한다. 당연하지만 거부하고픈 진실이다.

그래서, 해피 엔딩이든 비극적 결말이 됐든, 멜로 영화는 사랑의 유한함에 대한 방어기제 역할을 한다. 하지만 허진호(44) 감독의 영화는 되려 그런 환상을 무너뜨린다. 그의 영화 속 사랑은 방부처리가 돼 있지 않다. 허진호의 네 번째 사랑이야기, <행복> 이 10월 3일 개봉한다.

허진호는 말한다, 결핍이 없다면 그건 사랑이 아니라고

"글쎄, 사랑이 뭘까…. '사랑'이라는 개념 자체가 완벽성에 대한 강박감을 내포하고 있는 건 아닐까? 사랑은 변치 않는 것, 사랑은 모든 것을 이해하고 용서하는 것… 하지만 그건 종교적인 사랑이겠지.

남녀 간의 사랑에는 분명히 어떤 결핍이 있다. 완벽한 사랑에 대한 판타지를 갖고 산다면 굉장히 외롭게 살아갈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아니면 누군가를 만나더라도 '왜 나는 완전하지 않지' 이런 생각 때문에 불행하거나."

한 남자가 있다. 사업 실패의 열패감과 무절제한 생활로 간이 굳었다. 문 열쇠의 비밀 번호를 바꿔 버린 연인에게 "나쁜 년"이라는 비릿한 욕을 내뱉는다. 누렇게 변해 버린 얼굴을 들고, 그는 '희망의 집'이라는 요양원을 찾아 간다.

거기서 한 여인을 만난다. 폐의 절반 이상을 쓰지 못하지만, 푸석한 그의 영혼에 물기를 주기엔 충분하다. 굳은 가지에서 두릅순이 돋을 무렵, 두 사람 사이에서 사랑의 감정이 싹튼다. 그러나 가을이 되고, 사랑의 순은 곧 이울고 만다.

소멸하는 사랑만? 내 영화가 왜 그런진 나도 몰라

"사랑이 시작되고, 고조되고, 부식하고, 소멸한다… 듣고 보니 그러네. 지금까지 내 영화들이 사랑의 충만한 에너지보다는, 그 과정에 시선을 둔 것 같다. 이유는 나도 정확히 모르겠다. 사랑의 처음부터, 연애를 막 시작하고 관심을 갖게 되고, 이럴 때가 참 예쁜 것 같다.

찌릿찌릿한 그 감성. 그건 다른 데서 빌려오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이 흔들리고 변해가고, 알면서도 잘못 나가고… 하긴 요즘 영화가 꼭 기승전결 구조를 따를 필요도 없는데…."

사랑의 감정은 일상의 관성을 벗어난 곳에서만 가능한 것일까. 레일을 벗어난 바퀴에서 불꽃이 튀듯 시작된 사랑은, 그것이 궤도를 되찾는 순간 권태의 인력에 흡수되고 만다.

건강을 되찾은 남자는 서울 생활과 옛 연인의 농염한 모습에 끌리는 자신을 주체할 수가 없다. 동화 같은 시골 생활은 "아, 미치겠다!"는 답답함에 함몰되고, 지고지순한 여인에게 "밥 천천히 먹는 거 지겹지도 않냐?"고 얼음덩이 같은 말을 던진다. 허진호 감독의 영화는 늘 그렇게, 가슴 뛰는 사랑의 시작과 간을 녹게 만드는 잔인한 이별이 겹친다.

이번엔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그런 영화는 아니다

"사랑에 대한 허무주의? 아니, 나는… 사랑을 긍정하는 것 같다. 결혼도 했잖아(웃음). 이 영화는 사랑이 변한다, 그런 이야기는 아닌 것 같다. 그 얘기는 <봄날은 간다> 에서 했고… 난 생활에서 접할 수 있는 얘기를 영화로 만든다.

<8월의 크리스마스> 같은 경우는 '사진사가 자신의 영정 사진을 찍으면 어떨까'하는 생각에서 시작했고, 이번 영화는 몸이 아픈 사람들에 대한 얘기를 해보고 싶었다. 다만 그 얘기들에 남녀 이야기를 집어 넣는데, 그러면서 멜로로 포장이 되는 걸까… 근데 되도록 그걸 현실적으로 만들고 싶다."

두 사람이 처음 손을 맞잡는 오솔길에서나, 이별을 깨닫고 여자가 미친 듯 내달리는 길에서나, 허진호 영화의 매력이 유감 없이 발산된다.

기교를 크게 부리지 않고도 감독은 스크린 가득 물빠진 청바지 색감의 감수성을 불어 넣었다. 여백과 절제미로 빚어낸 고급스러운 미장센 속에서, 임수정과 황정민 두 배우가 진폭이 긴 여운을 남긴다.

전작에 비해 신파적이고 통속적인 요소를 많이 가미했지만 왠지 느끼하지는 않다. 변치 않겠다는 '새빨간 거짓말', 그 아련한 추억 속으로 걸어 가게 만드는 가을 아닌가. 15세 관람가.

밝지만 슬픈 영화, 내 작품이 그랬으면…

"'행복의 나라로'는 원래 좋아하는 음악이다. 촬영장소 헌팅할 때 늘 들었고, 결국 영화의 마지막에 삽입했다. 제목이나 내용은 참 밝은 내용인데, 노래를 들으면 참 슬픈 느낌을 준다.

한대수 선생님을 만나서 얘기를 들어보니, 개인적으로 무척 힘든 시기에 만든 노래라고 하더라. 내 영화도 혹시 그런 것 아니냐고? 글쎄…관객이 판단해야 할 몫이겠지."

유상호 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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