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여행/ 촉석루 대청에 서니詩한수 ‘풍류 절로…’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여행/ 촉석루 대청에 서니詩한수 ‘풍류 절로…’

입력
2007.09.27 02:51
0 0

‘그 바위 홀로 서있고 그 여인 우뚝 서있네. 이 바위 아닌들 그 여인 어찌 죽을 곳을 찾았겠으며, 이 여인 아닌들 그 바위 어찌 의롭다는 소리 들었으리요. 남강의 높은 바위 꽃다운 그 이름 만고에 전하리.’

경남 진주, 진주성 촉석루 아래 남강의 물살을 버티고 선 작은 바위 하나. ‘의암(義巖)’이란 이름을 가진 바위에 붙여진 싯귀다.

진주에 갔을 때 진주성 촉석루를 찾지 않을 수 없듯, 진주성 촉석루를 이야기 할 때 논개를 빼놓을 수는 없는 일이다. 촉석루 앞 의암에서 남강의 푸른 물에 왜장을 껴안고 붉은 꽃잎처럼 스러진 이후 논개는 우리들 가슴에서 ‘은유’가 됐고, ‘신화’가 됐다.

논개의 죽음은 그에 대한 미천한 기록 탓에 무한한 상상력의 덧칠을 통해 아우라(고고한 기운)를 키워갔다. 논개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인 유몽인의 <어우야담> 은 ‘논개가 진주의 관기였다’고 적고 있다. 영조 16년(1742년) 건립된 논개 사당의 명칭도 의로운 기생을 모신 ‘의기사(義妓祠)’이고, 그 의기사에 남긴 정약용이나 매천 황현 등의 글에도 논개를 ‘기생’이라 했다.

하지만 최근 논개가 기생이 아닐 것이라는 주장이 부각됐고, 이것이 소설 등을 통해 일반화하는 분위기다. 논개는 ‘천한’ 기생이 아닌 양가집 출신으로 진주성 싸움에 목숨을 바친 최경회의 첩이었다가 지아비를 잃고는, 기생인 척 촉석루 의암에 나가 원수인 왜군을 끌어안고 몸을 던졌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도 몇 안 되는 기록으로 짜맞춘 추측이다. 충분한 기록이 없으니 누구도 단정지을 수 없는 게 논개의 이야기일 것이다.

여기서 갑자기 궁금해졌다. 그런데 왜 이제 와서 사람들은 논개의 드라마틱함을 살리기 위해 ‘기생’을 버리려 하는 걸까. 아릿다운 기생만으로는 꽃잎처럼 스러진 논개의 죽음을 설명하는데 성에 차지 않아서일까. 기생이 뭐 어때서.

예부터 진주는 풍류의 고장이었다. 그 풍류는 교방, 즉 기생문화에서 꽃을 피웠다. 오랜 전통의 진주 기생은 전국적으로 명성이 높았다.

진주에서 논개 추모에 가장 적극적이었던 이들은 기생이었다. 조선 후기 매년 6월 논개를 위한 ‘의암별제’를 모실 때도 300여 명의 기생들이 연 3일 동안 제사를 드렸다고 한다.

산홍의 이야기도 진주 기생의 기개를 논할 때 빠지지 않는다. 구한말 을사오적중 하나인 이지용이 진주에 왔을 때다. 이지용은 기생 산홍을 보고는 한눈에 반해 첩을 삼겠다고 나섰다. 이에 산홍은 ‘아무리 천한 기생 신분이라도 어찌 역적의 첩이 될 수 있겠느냐’며 거절했고, 몹시 두들겨 맞고서는 스스로 목을 매 자결했다. 산홍은 그 전에 논개를 기리며 ‘그저 피리 불고 북 치며 땀 흘리는 자신을 부끄러워 한다’는 시를 의기사에 남기기도 했다.

진주성 문화해설사 장일영(65)씨는 “서울에서 3ㆍ1운동이 있은 후 19일 진주에서 기생들이 시위를 벌인 기록이 있다”며 “이는 경남에서 열린 두 번째 독립시위로 당시 경찰에 잡혀간 한 기생이 무명지를 깨물어 혈서로 ‘기쁘다, 이제 삼천리 강산에 무궁화 꽃이 다시 피었다’고 적었다”고 말했다.

지금은 논개나 산홍의 고고한 아름다움을 엿볼만한 진주의 기생집은 없다. 대신 평양의 부벽루, 밀양의 영남루와 함께 3대 누각이라 손꼽는 촉석루에 오르면 진주를 감도는 풍류 한자락을 몸으로 느낄 수 있다. 강변에 솟은 촉석루 너른 대청에 서면 끊임없이 불어대는 시원한 바람이 겨드랑이를 간질이고 둥실 어깨를 들썩이게 한다. 이색 정몽주 이황 이언적 등 글을 안다는 선비들 중 촉석루에 시 한수 남기지 않은 이 없다. 바로 옆에는 논개를 기리는 사당 의기사가 있다. 우리 역사상 유일한, 여자를 위한 사당이다.

진주는 낮보다 밤이 아름답다. 낮에는 볼품없는 작은 도시의 풍경에 불과하지만, 해가 지고 성곽에 화려한 조명이 비춰지기 시작하면 고도 진주의 매력이 한껏 피어난다.

화려한 진주의 밤은 이제 곧 황홀한 야화로 더욱 빛을 발한다. 진주남강유등축제가 10월1일부터 14일까지 촉석루 앞 남강에서 진행된다. 유등(流燈)은 임진왜란 당시 진주성에 고립됐던 민ㆍ관ㆍ군이 성밖 가족에게 안부를 전하고, 군사신호를 보내기 위해 강물에 띄워 보낸 등불에서 유래한다. 3만여 개의 수많은 등불이 강가에서 혹은 강물에 떠다니며 밤의 축제를 노래한다.

진주성 건너편 강변 둔치에는 1만8,000개의 소망등이 내걸린다. 개당 1만원을 내고 사랑하는 사람들의 안녕을 비는, 소중한 꿈의 등이다. 이미 1만5,000개는 예약이 완료됐고 현장에서 나머지 3,000개 등을 신청받아 불을 밝힌다.

배를 타고 등불 사이를 휘젓고 다니는 등배도 운영된다. 유등축제와 함께 3~10일에는 개천예술제가, 2~7일에는 진주전국민속소싸움 대회가 열린다. 진주유등축제준비위 (055)755-9111

진주=글ㆍ사진 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