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고령화와 치매 유병률(有病率)의 동반 상승으로 우리나라의 치매 환자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연간 1만6,000명씩 증가하고 있다. 이에 따라 올 연말에는 사상 최초로 40만명에 육박할 전망이지만 국가적 차원의 대책은 후진국 수준을 벗어나지 못해 환자와 가족의 경제ㆍ심리ㆍ육체적 부담은 갈수록 가중되고 있다.
20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00년 28만2,000여명이던 전국 치매 노인은 올해 39만9,000명(480만명 노인 대비 8.3% 유병률)에 달할 전망이다.
치매에 대한 기준이 명확하지 않아, 객관적 비교에 어려움이 있지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내놓은 일본(3.8%), 미국(1.6%) 스페인(1.0%) 영국(2.2%)의 관련 통계를 감안하면, 한국의 유병률은 세계 최고 수준인 셈이다. 복지부는 고령화의 급진전으로 치매 발생률이 계속 높아져 2010년(유병률 8.6%)과 2020년(9.0%)에는 치매 환자가 각각 46만1,000명과 69만3,000명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치매 인구가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증가하고 있지만, 치매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대책은 여전히 초보적 수준에 머물고 있다. 치매 관련 업무를 총괄하는 보건복지부 노인정책팀 김현숙 사무관은 “치매 조기 검진에 대한 인식, 정밀 검진을 위한 보건소와 병원간의 연계, 치매 진단 이후의 지원 등의 측면에서 모두 선진국 수준에 턱없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김 사무관에 따르면 전국 250개 시ㆍ군ㆍ구 보건소에서 치매 여부를 점검하는 간이 진단 사업을 실시하고는 있으나, 간이 진단에서 의심 판명을 받은 노인에 대한 정밀 검진은 85개 시ㆍ군ㆍ구에서만 시행되고 있다. 또 치매 진단을 받아도 치매 진행을 지연시키거나 치료할 수 있는 재활 프로그램 및 관련 치료약 개발도 지지부진한 형편이다.
김 사무관은 “선진국은 이미 수 십년 전부터 9월 21일을 ‘치매의 날’로 제정해 치매가 초래하는 사회적 문제에 대처했는데, 우리나라는 올해 처음으로 법정 기념일이 됐을 뿐만 아니라 관련 예산은 12억원이 전부”라고 덧붙였다. 그는 “내년 노인장기요양보험 도입으로, 중증 치매 노인에 대한 지원 규모가 늘어난 것은 그나마 다행”이라고 말했다.
치매 환자가 사실상 의료체계의 사각지대에 방치되면서, 육체ㆍ정신적 부담은 물론이고 연간 3조원에 달하는 사회적 비용 대부분은 환자 가족이 전담하고 있다.
한국치매가족협회가 국민건강보험공단 자료를 분석한 결과, 치매 환자는 의료비만으로 연평균 507만3,000여원을 사용하고 있으며, 교통비와 식비, 간병비 등까지 포함하면 연간 부담은 787만원에 달한다. 올해 치매 환자가 40만명에 달하는 것을 감안하면, 치매의 사회적 비용은 3조원을 넘어서는 셈이다.
한 의료단체 관계자는 “치매노인을 위한 무료 장기 요양시설이 전국에 364개(2만5000여명 수용 가능)에 불과하고, 민간 시설 이용료는 매달 150만∼200만원이 넘는다”며 “이같은 현실 때문에 치매는 환자 본인과 가족의 삶을 함께 망치는 재앙이 되고 있다”고 대책 마련을 호소했다.
조철환 기자 ch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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