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선물거래소의 이영탁 이사장. 대외 직함은 이사회 의장이지만 그는 '주식회사 한국증권선물거래소'의 최고경영자(CEO)이기도 하다.
증권선물거래소의 주업무는 국내 증권거래 관리. 일견 해외사업과는 별 상관이 없어 보이지만 이 이사장은 요즘 잦은 해외출장에 정신이 없다.
그의 여러 출장 목적 가운데 하나는 이제 막 자본시장이 움트기 시작한 아시아 각국에 증권거래소 설립을 도와주는 일이다. '선진 금융기법 전파'라는 국가적 명분도 무시 못할 이유지만 한편으로는 주식회사의 수익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19일 이 이사장은 특별한 기자회견을 가졌다. 라오스 중앙은행 총재를 초청해 2010년까지 라오스에 증시를 설립하고 조만간 라오스의 공기업을 한국증시에 상장 시키는 데 협의하는 자리였다. 앞서 4월 라오스에 조사단을 파견해 현지 조건을 파악한 이 이사장이 6월 말 직접 라오스를 방문해 부통령 등 정부 고위 관계자와 담판을 지었던 결실을 본 것이다.
이 이사장의 '거래소 수출'은 라오스 뿐만이 아니다. 현재 인도차이나 반도에서 증시가 설립되지 않은 나라 4개국 중 여전히 조성환경이 열악한 미얀마를 뺀 3개국에 모두 '한국형 증시'가 들어서고 있다.
1996년부터 6년 간에 걸쳐 베트남 증권시장 설립 사업을 지원한 데 이어 지난해 11월에는 캄보디아 정부와 증권거래소 합작 설립에 합의, 2009년 설립을 목표로 작업을 진행 중이다. 캄보디아는 베트남과 달리 시장 감독기구 설립까지 지원하는 '토털 서비스' 형태다.
특히 지난해 말 말레이시아 증권거래소에 채권매매시스템을 수출한 과정은 이 이사장의 집념을 잘 보여준다. 당초 말레이시아가 시스템을 국제 경쟁입찰에 부치자 이 이사장은 우수하긴 하지만, 남에게 한 번도 팔아본 일 없는 우리 시스템을 팔아보자고 직원들을 독려했다.
경쟁 상대는 인도 대만 영국 등 세계적인 업체 9곳. 이름값보다 품질을 앞세운 마케팅으로 1차 기술심사를 통과한 우리 거래소는 '인도의 삼성'이라 불리는 막강 경쟁업체(인도 TCS사)와 맞붙었다.
세계적인 기술, 싼 인건비, 말레이시아와의 인종적 유대감까지 등에 업은 TCS사에 맞서 이 이사장은 국제회의 중간에 짬을 내 말레이시아 거래소 이사장을 설득하고 채권시장 컨설팅 등의 당근까지 제시하며 끝까지 물고 늘어졌다.
결국 말레이시아는 최종결과 발표를 3개월이나 미루며 고심한 끝에 한국 거래소를 택했다. 이는 아시아 지역 거래소가 다른 나라에 거래 시스템을 유상 판매한 최초의 사례이기도 했다.
이 나라들의 거래소 운영이 본궤도에 오르면 투자지분에 대한 배당 수익이나 지분매각 차익을 통해 '대박'을 터뜨릴 가능성도 높다. 여기에 무형의 효과는 더욱 크다. 실제 브릿지ㆍ한국투자ㆍ동양종금ㆍ미래에셋ㆍSK 등 국내 증권사의 활발한 베트남 진출은 거래소가 미리 바닥을 다져놓은 효과가 컸다.
노희진 증권연구원 박사는 "장기적으로 아시아 자본시장이 단일시장으로 통합될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증시 개설 지원은 매우 긍정적인 활동"이라고 평가했다.
김용식 기자 jawoh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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