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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수 칼럼] 망신당한 건 신정아만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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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수 칼럼] 망신당한 건 신정아만이 아니다

입력
2007.09.22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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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아 사건'은 지금 우리 사회 각 분야의 양식을 테스트하고 있다. 언론, 대학, 공직자, 검찰 등 각 분야가 이 사건을 통해 그 바닥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대통령까지 공연히 뛰어들어 참담한 처지가 되었다. 온 나라가 이 사건으로 시끄러운 가운데 양식을 지키는 사람을 찾기 힘들 정도다.

언론의 보도자세는 양식과 거리가 멀다. 한평생 언론에서 일해 온 나 자신도 신문 방송이 어디까지 갈 것인지 두렵게 느껴진다. 언론의 생명은 이성(理性)인데, 거의 모든 언론이 이성을 잃고 과잉경쟁에 뛰어들어 함께 떠내려가고 있다.

신문마다 주요지면을 신정아 변양균으로 도배질하고, 선정적인 추측보도가 춤추고 있다. 명예훼손 정도가 아니라 인권을 짓밟는 보도가 수두룩하다.

● 사회·언론 어디까지 갈지 두려워

한 석간신문이 '신정아의 나체'라고 주장하는 사진을 실어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지만, 다른 신문들의 선정성도 크게 다르지 않다. 석간신문이 나체사진을 터트리자 거의 모든 신문이 인터넷 판에 석간지 보도를 퍼 날랐다가 비난여론이 거세지자 삭제했다.

조간신문 제작시간에 그 사진이 터졌다면 더 많은 신문들이 지금 곤욕을 치르고 있을 것이다. 보수지도 진보지도, 권위지도 대중지도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선정보도의 유혹을 떨치지 못했다.

학력위조 사건으로 출발한 이 사건은 청와대 정책실장인 변양균씨가 배후로 떠오르면서 정치성을 띠게 되었고, 노 대통령의 "(보도할) 깜도 안 된다"는 발언이 청와대를 겨냥한 보도경쟁에 기름을 부었다.

언론의 취재로 많은 사실이 드러나고, 머뭇거리던 검찰의 등을 떠밀게 된 것이 사실이지만, 신정아 사건 보도는 국민의 알 권리 운운하기에도 민망할 만큼 문제가 많았다.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에 대해서는 신정아씨와의 부적절한 관계가 의심되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교과서적인 공직자의 길'을 걸어온 사람이라는 평가가 우세했고, 동정 여론도 있었다.

그러나 신정아씨를 무리하게 교수로 채용한 동국대 이사장이 세운 절에 부당하게 국가예산을 지원하도록 압력을 가했다는 등의 혐의가 드러나자 교과서적인 공직자의 수준이 이 정도냐, 이 나라에 과연 양식을 가진 고위공직자가 얼마나 될 것이냐는 한탄이 나오고 있다.

검찰은 법원이 신정아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하자 "사법의 무정부 상태를 야기하는 무책임한 처사"라고 맹렬하게 비난하고 있다. 영장기각에 대해 검찰이 법원을 비난하는 것은 흔히 볼 수 있는 일이지만, 이번에는 검찰의 호들갑이 좀 우습게 느껴진다.

늑장수사로 피의자들에게 증거를 인멸할 시간을 주었다는 비난을 받고 있는 검찰이 이제 와서 '도주와 증거인멸의 우려'를 내세우며 '사법의 무정부 상태' 운운하는 것은 책임을 떠넘기려는 냄새가 난다.

검찰은 수사과정에서 부정확한 피의사실을 공표하고, 피의자의 사생활에 속하는 정보를 흘리는 등 구태의연한 잘못도 저질렀다. 일주일 전에는 '사랑하는 정아에게'라고 쓴 변양균씨의 메모와 보석 목걸이가 발견됐고, 이메일로 보낸 낯 뜨거운 연애편지가 200여 통이나 발견되었다는 설이 검찰에서 흘러나와 장안의 화제가 되었는데, 최근에는 "낯 뜨거운 내용은 없고, '사랑하는 후배'라는 호칭 정도"라는 설이 흘러나왔다.

● 이 사건 수준이 나라 수준 안돼야

'사랑하는 정아'와 '사랑하는 후배'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검찰이 정식으로 발표했던 것은 아니지만 검찰에서 이런저런 부정확한 설이 흘러나와서는 안 된다.

검찰은 초기의 잘못을 인정하는 겸허한 자세로 진실규명에만 매달려야 한다. 불구속 수사 확대는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요구인데, 번번이 법원과 갈등을 빚는 것은 세상을 시끄럽게 할 뿐 소득이 없는 것이다.

언론, 대학, 검찰, 공직사회 등의 수준이 '신정아의 수준'으로 내려가고, 그것이 나라의 수준이 되어서는 안 된다. 신정아 사건에서 사회 각 분야가 교훈을 얻어야 한다.

장명수 본사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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