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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정파주의는 지역주의보다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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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정파주의는 지역주의보다 낫다?

입력
2007.09.22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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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권영길 의원을 대선후보로 최종 확정한 민주노동당 경선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정파주의 선거다.

당내 최대 정파인 자주파(NL)의 핵심 인물들은 7월 21일 회의를 갖고 이번 경선에서 권 의원을 공개 지지하기로 했다. 당원들의 자유 투표를 봉쇄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비민주적 결정이었다.

애초에 국민승리21과 민노당을 창당한 것은 평등파(PD)였다. PD의 각 파벌은 특정 계파에 속하지 않은 권 의원에게 '통합형 리더'의 역할을 부여했다.

덕분에 그는 1997년 국민승리21과 2002년 민노당에서 경쟁 없이 대선후보로 추대될 수 있었다. 그런데 2002년 지방선거 당시 민노당에 들어온 뒤 서서히 세력을 확장해 당권을 장악한 NL이 이번 경선에서 권 의원을 내놓고 지지한 것이다.

이에 따라 반대파인 PD는 권 의원 대신, 정통 PD맨인 심상정 노회찬 의원을 지원(공개적으로는 아니지만)할 수밖에 없었다. 민노당은 당내 선거 때마다 정파주의 논란에 휩싸여 왔지만 특정 정파가 대선후보 경선에서 공개적으로 한 후보를 지지한 전례는 없어 충격이 컸다.

민노당은 정파주의에 대해 입으로는 "안 된다"고 하면서도 사실상 용인하는 분위기다. 민노당의 한 관계자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민노당에 정파가 있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안다.

다른 정당처럼 출신 지역을 중심으로 정치를 하는 것보다는 정치적 견해 차이로 뭉치는 게 그래도 낫지 않냐"고 강변했다. 그러나 민노당의 정파주의는 다른 당의 지역주의만큼이나 한국 정치에 암적 존재다.

지역주의는 지역이 모든 가치를 초월하는 '유일 신념'이 되게 한다. 정파의 이름으로 모든 훌륭한 가치를 쓰레기통에 폐기 처분한다는 점에서 민노당의 정파주의도 지역주의나 매한가지다.

이번 선거에서 세 후보는 ▦미국의 경제 지배에 대응해 한ㆍ중ㆍ일 삼각 경제동맹을 지향하는 동아시아 호혜경제론(심 의원) ▦남북 연방제 이전에 1국가 2체제의 코리아연합을 설정하는 정책(노 의원) ▦친환경 재생가능에너지의 대북 지원(권 의원) 등 좋은 공약을 많이 내놓았다. 그런데 정파주의 선거가 되다 보니 이런 경쟁력 있는 공약들이 눈에 보이지도 않았다.

또 지역주의에 기반한 계파는 선거에서 승리한 뒤 논공행상을 통해 공천이나 당직 배분에서 최대한의 이익을 챙긴다. 이는 지역주의 계파가 존재하는 물질적 토대가 된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다른 지역주의 계파에 속한 인물은 아무리 유능하고 지도력이 있어도 배제되는 경우가 많다. 정파주의도 마찬가지다.

이번에 권 의원을 밀었던 NL은 더 많은 공천과 당직을 요구할 것이고, 권 의원이 이를 거부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결국 다른 정파의 훌륭한 인물들이 발탁될 확률은 낮아질 수밖에 없다.

민노당은 2004년 17대 총선에서 지지율이 무려 13%에 달했다. 현실 정치에 염증을 느낀 젊은 층의 지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표를 주고 나니 80년대 하던 정파 싸움을 그대로 하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한두 사람 떠나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지지율 5% 정당이 돼버렸다. 정파주의로 소일하는 현재 모습 그대로라면 민노당 해체도 멀지 않아 보인다. 그래서 민노당을 좋아하는 나도 불안하다.

이은호 정치부 차장 leeeun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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