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북악산 '백사실' 8개월간의 기록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북악산 '백사실' 8개월간의 기록

입력
2007.09.22 00:05
0 0

물소리 새소리 바람소리의 정서적 가치는 얼마일까? 저녁노을과 고운 낙엽이 주는 평온함의 값은 어떻게 계산할 수 있을까? 올 1월부터 백사실 숲을 느리게 관찰하고 있다.

정상을 목표로 하지 않고 느린 걸음으로 풀과 나무에 눈길을 주며 걷는다. 산행도 지루하지 않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생명의 소중함도 느낄 수 있다. 한 달에 3~4차례 숲이 보여주는 아름다움을 카메라에 담았다.

소나무 물오리나무 밤나무가 하늘을 가리고, 국수나무 누리장나무 사이로 난 오솔길을 따라 내려가면 이 숲에서 가장 아름다운 백사실 연못을 만난다.

개울쪽으로는 아름드리 느티나무가 주위를 감싸고, 산자락으로는 제법 큰 벚나무 숲이 아늑함을 더해 준다. 조금 위 계곡에는 커다란 산벚나무가 가로누워 있다.

봄에 잠시 잎을 키우다 죽음을 면치 못했지만 나날이 다양한 버섯을 키우고 있다. 언덕배기엔 7월부터 누리장나무가 누릿한 향기를 뿜고 있다.

맞은편 산자락은 참나무와 아까시나무가 숲의 꼭대기를 장식하고, 팥배나무와 소나무가 중간층을 채우고 있다. 싸리나무 붉나무는 햇빛을 아껴 받으며 아래층을 형성하고 있다.

담쟁이는 낙엽 쌓인 바닥을 기어 바위와 나무를 타고, 이끼와 무수한 풀들이 숲의 맨 살을 감싸고 있다. 계곡에는 애기똥풀 고마리 개여뀌 물봉선 등 작은 풀들이 계절에 따라 꽃을 피운다.

흔히들 ‘다투어 꽃이 피고 싹을 틔운다’고 하지만 이는 경쟁에 익숙한 인간 중심적인 표현일 뿐이다. 숲은 위와 아래, 양지와 음지, 진땅과 마른 땅으로 공간을 나누고 봄 꽃과 여름 가을꽃으로 시간을 나눈다.

수분을 도와주고 꿀과 열매를 가져가는 곤충과 새들도 자연스레 풀과 나무가 나눈 시공간에 따라 최대한 경쟁을 피한다. 경쟁이 전혀 없을 순 없지만 숲은 절대적 강자의 독식을 허락하지 않는다. 나눔과 경쟁은 파괴적이지 않고 다양성이 공존하는 지속 가능한 숲을 키운다.

이곳을 처음 찾았을 때 신비롭게 들리던 딱따구리 소리가 4월쯤부터 사라졌다. 입구에 2층 집을 짓는 공사장 소음이 온 숲을 찢어놓던 무렵이었다.

그 집은 이제 멋진 외관을 완성해가고 있지만, 창문을 열면 들려오는 아름다운 새소리 하나를 잃어버렸다. 백사실의 나무와 풀은 오늘도 그 자리에서 제 몫만큼 살아가고 있다. 인간의 파괴적 간섭이 없는 한 느리지만 큰 숲으로 자라날 것이다.

■ 백사실은?

백사(白沙)는 조선시대의 문인이자 <오성과 한음> 에 나오는 오성 이항복(李恒福, 1556~1618)의 호이다. 백사실은 바로 이항복의 별장이 있던 곳으로 행정구역상 서울 종로구 부암동에 속한다.

현재는 집터만 남아 있지만, 집 앞의 연못은 온전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집터에서 북악산 뒷자락으로 이어지는 백사실 숲과 계곡은 인근 부암동 평창동 주민들의 휴식처로 사랑받고 있다.

한국일보 포토온라인저널(http://photoon.hankooki.com)의 ‘느린 만큼 보이는 숲’ 코너에서 더 많은 사진을 볼 수 있습니다.

최흥수기자 choissoo@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