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의 추석 차례상은 어떠했을까? 궁중에서도 송편과 토란탕이 대표적인 추석 음식으로 대접 받았을까? 궁중음식연구원(원장 한복려)이 추석을 앞둔 19일 조선왕실의 추석 차례상을 재현했다.
조선시대 종묘의 각 실에 놓을 제수품을 시기별로 풀이한 해설서 <각절 제수 진설도(各節 祭需 陣設圖)> 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역대 임금 관련 자료를 보관하는 전각이었던 봉모당의 인장이 찍혀있고 언문으로 기록돼있어 제사를 담당한 궁녀들이 참조한 것으로 추정되는 책이다. 각절>
그 동안 궁중음식 재현행사는 많았지만 궁중의 추석 차례상을 역사적 기록에 따라 재현한 것은 이번이 처음.
조선시대의 모든 제례 가운데서도 가장 격식이 높은 의식인 종묘제례에 사용된 상차림이지만 놀랍게도 이날 행사는 궁중의 추석 차례상이 민간의 것에 비해 한결 간소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중요무형문화재 38호(조선왕조 궁중음식) 기능보유자인 한복려 원장은 “민간에서는 좋은 음식을 먹어볼 기회라는 것이 명절 외에는 딱히 없었지만 궁에서는 늘 음식이 풍성했고, 추석상은 종묘에 나가 따로 올렸다는 점에서 음식 치레를 많이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해석했다.
“다만 제사 음식이 ‘차린 것은 많아도 먹을 것은 없다’ 소리가 나오는 반면 궁중 차례상은 정말 맛깔스러운 것들만 깔끔하게 차려냈음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음식의 내용면에서 궁중 차례상은 민간과 확연한 차이를 보였다. 우선 햇곡을 가지고 만드는 송편이나 토란탕, 제철 햇과일 등 추석음식의 대표주자들이 상에 오르지 않았다.
대신 수단 골탕 양적 동과만두가 상에 올랐다. 수단은 동전만하게 빚은 떡을 꿀물에 잰 음식을 말하고, 골탕은 소의 등골을 이용해 만든 전, 양적은 소화가 잘되는 소의 위를 꼬치에 꿴 뒤 기름을 둘러 구워낸 것이다. 특이할 만한 음식은 동과만두다.
지금은 잊혀진 박과 식물인 동아가 조선시대만 해도 애용됐음을 보여주는 대목. 동아 열매의 속을 얇게 저며 만두피를 만들고 고기소을 넣고 싼 뒤 녹말가루를 묻혀서 쪄낸 음식이다. 한 원장은 “조상들은 동아를 얇게 저며 말려서 겨울철 채소 섭취용으로 이용하곤 했다”고 덧붙였다.
주식으로 밥 대신 만두국인 병시가 오르는 것도 특이하다. 제사에서는 국물은 빼고 건더기만 올렸다. 명절 차례는 고인을 기리는 제사와 달라서 밥을 꼭 내야하는 법은 없다. 지방에 따라 밥 대신 송편만 올리는 곳도 있다.
밥이 없으므로 반찬 격인 나물이나 자반, 김치 등이 오르지 않는 것도 눈길을 끈다.
어물을 재료로 쓴 탕 적 전도 없다. 대신 진간장에 전복을 달게 조린 전복초와 야채와 고기를 두어 네모나고 큼직하게 부친 누름적, 생선과 고기를 말린 포를 고이고 역시 말린 문어를 꽃모양으로 오려서 장식한 절육이 오른다.
과일도 제사의 대표과일인 밤 대추 감 배를 햇과일 그대로 진설하지 않고 조과나 수정과, 과편 등 절기음식으로 만들어 올리는 것도 차별된다. 특히 초여름 과일인 앵두를 이용한 앵도병이 상에 오른 것이 눈길을 끈다.
앵두를 갈아 묵처럼 만들어 상에 올린 것으로 조선시대 궁중에서는 앵두를 저장해두고 사용했다는 것을 알려준다.
조선왕조의 차례상은 또 우리 조상들이 색을 사용함에 있어서 기품과 세련미를 추구했음을 보여준다. 송편 대신 상에 올린 떡은 밀설고(일명 꿀설고) 당귀자박병 율단자 세 종류인데 따로따로 놓지않고 같은 그릇에 올린다.
먼저 멥쌀에 꿀을 넣고 비벼 노란색을 내 고물없이 백설기처럼 쪄낸 밀설고 편을 올리고 그 위에 찹쌀가루에 푸른색 당귀를 넣고 기름에 지진 당귀자박병, 다시 찹쌀 새알심을 밤고물에 묻혀 완자 형태로 만든 율단자를 올려 노란색과 청녹색, 흰색이 조화롭게 어우러지도록 했다.
강정 역시 흰색과 홍색을 꼭 같이 써서 아름다운 색채대비 효과를 살린다. 오방 원색을 바탕으로 하되 천연재료에서 나오는 자연의 색을 씀으로써 상차림을 점잖고 기품있어 보이는 것이 특색이다.
최근엔 추석이나 설의 차례음식도 돈 주고 배달시키는 경우가 꽤 많다. 불가피한 상황이 있을 수 있지만 가족이 모처럼 한자리에 모여 조상을 기리는 자리에 주문한 음식을 내놓기 영 꺼림칙하다는 소리도 높다.
한 원장은 “민간에 비해 한결 간결하면서도 정성을 들인 궁중 차례상을 재현하고 보니 명절증후군을 말할 게 아니라 음식 치레을 간소화하고 가족의 화목에 더 정성을 들이는 명절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이성희 기자 summer@hk.co.kr
■ 차례상 '반서갱동·좌포우해'… 동·서가른 이유는?
‘남의 집 제사에 감 놔라 배 놔라 하지 않는다’는 속담이 있다. 그만큼 각 지방에 따라, 또 가풍에 따라 차례 풍속이 다르고 차례상에 올리는 음식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반원칙은 있는 법.
반서갱동(밥은 서쪽에, 국은 동쪽에), 좌포우해(포 종류는 왼쪽, 젖갈류는 오른쪽에) 등이 그것이다. 그런데 동쪽과 서쪽을 굳이 가르는 이유는 뭘까? 또 누구 입장에서 가르는 것일까?
궁중음식연구원 한복려 원장은 “회갑연 등 살아있는 분을 위한 잔칫상은 동쪽이 위이지만, 돌아가신 분은 서역으로 떠났다 해서 서쪽이 위이다. 신위를 남자가 서쪽에 앉게 모시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음식을 상위에 올리는 방식은 제주가 제상을 바라보아 오른쪽은 동쪽, 왼쪽은 서쪽으로 부른다.
최근 명절음식 해설서 <명절밥상 & 차례상> 을 펴낸 가례원은 “제사상에서 굳이 음식의 진설법을 동(오른쪽)과 서(왼쪽)로 나눈 것은 오른쪽 음식이 왼쪽에 비해 상위식이니 먼저 드시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말했다. 어동육서는 생선이 육류보다몸에 좋으니 먼저 드시라는 뜻인 셈이다. 명절밥상>
제사상에 올리는 음식에도 이유가 있다. 빠지지않고 상에 오르는 대추와 밤은 자손의 번영과 가문 수호를 중시했던 조상의 의지가 담겼다. 대추는 원래 암수가 한 몸인 나무에서 자라 열매가 아주 많이 맺는다는 의미에서 자손의 번창을 기원하는 것으로 꼽힌다.
대추를 제사상의 맨 첫번째로 올리는 이유이다. 밤은 밤나무가 다 자란 뒤 죽은 밤나무를 캐보면 처음 싹을 텄던 밤톨이 그대로 남아있어서 ‘자신의 근본을 잊지 말라’는 뜻이 담겼다고 한다.
제사상에 절대 올리지 말아야 할 품목에도 사연이 있다. 복숭아는 복숭아나무가 예로부터 귀신을 쫓는 나무라 해서 기피되며, ‘치’자로 끝나는 갈치와 꽁치 등은 비린내가 심한데다 천한 음식이라 제사상에 올리지 않았다는 설도 있다.
이성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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