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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정권 말 경제위기 증후군

입력
2007.09.20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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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이후 한국경제는 정권말이 되면 경기가 침체되고, 심한 경우 위기에 빠져드는 '정권말 증후군'에 시달려왔다. 초기에는 제왕적 힘을 발휘하다가 말기에는 레임덕에 빠져드는 정권의 성쇠가 경기 사이클에도 엇비슷하게 나타나곤 했다.

'3저 호황'이라는 축복 속에서 출범한 노태우 정권은 10%가 넘는 고성장을 구가했지만 정권 말기인 92년에는 최악의 노사분규와 부동산값 폭락으로 성장률이 반 토막 났다.

김영삼 정권은 집권 후 8%가 넘는 고성장을 이루다가 말기에는 외환위기라는 대재앙을 초래했다. 이어 김대중 정권은 외환위기를 벗어나려고 조급하게 경기부양책을 추진해 99년 10% 가까운 성장을 달성했지만, 말기에는 카드대란을 불러왔다.

● 정권말마다 반복되는 경제위기

정권말이면 경제도 시드는 이유는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거시경제 측면에서 본다면, 정권 초기에는 눈에 보이는 성과에 집착해 경기활성화 정책을 쏟아내 경기가 살아나지만 말기에는 그 부작용이 나타나면서 경기가 급락하게 된다.

실제로 김영삼 정부는 집권하자 마자 '신경제 100일 계획'을 추진했고, 김대중 정부는 '길 가는 개도 카드를 물고 다닐 정도'라는 카드활성화 대책을 추진했다.

정권 말기에는 권력의 장악력이 약해져 구조조정, 부실정리 같은 난제 처리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라든가, 공무원의 복지부동으로 정책이 먹히지 않기 때문이라는 설명도 있다.

김영삼, 김대중 정권 말기의 레임덕은 자식과 측근들의 권력형 비리로 인한 대통령의 권위상실이 결정적이었다. 김영삼 대통령의 아들 현철씨는 외환위기의 단초가 된 한보사태와 연관돼 구속됨으로써 외환위기와도 무관치 않았다.

김대중 대통령도 2002년 세 아들의 스캔들이 잇따라 불거지면서 '식물 대통령' 상태에 빠져들었다. 이때는 카드대란의 징후가 구체적으로 나타난 시기이지만, 정부는 전혀 손을 쓰지 못했다.

그렇다면 참여정부는 정권말 경제위기 증후군으로부터 자유로울 것인가. 일단 경제 자체적으로 눈에 띄는 위기적 요인이 별도 없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세계경제 침체가 우려되고, 국내적으로도 주택담보대출의 부실 가능성이 있다거나, 유가를 비롯한 물가의 상승이 심상치 않은 정도다.

문제는 권력의 레임덕 여부다. 노무현 정부는 역사상 처음으로 레임덕을 극복한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장담해왔다. 측근이나 친인척 게이트 같은 도덕적 결함이 없기 때문에 꿀릴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레임덕이란 싹을 자르려는 듯 조그만 비판에도 쌍심지를 켜며 공격적으로 대응했다. 그러나 이 정권이 그렇게 자랑스럽게 내세우던 도덕적 무결점은 변양균 청와대 정책실장의 스캔들과 386 측근 정윤재 전 비서관의 비리의혹으로 빛이 바래게 됐다.

애초부터 권력은 부패하기 마련이라는 평범한 진리를 부정한 허황된 자만심이 빚은 결과다. 권력 핵심부가 가장 부패에 취약하다는 경계의 끈을 놓지 않았더라면, 변씨의 거짓말에 대통령이 놀아나는 한심한 상황까지는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 권력 공백 못지않게 과욕도 위험

검찰 수사가 진행되고 있는 만큼 대통령 측근 두 사람의 비리혐의가 어떤 파장을 가져올지는 점치기 어렵다. 그러나 비리가 사실로 드러나더라도 노 대통령의 태도가 크게 달라질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변씨와 신정아씨 관계가 드러난 직후 기자간담회를 자처해 "할 말이 없게 됐다"고 말하면서, 바로 태도를 바뀌어 정치권 인사들을 난도질하는 모습만 보아도 짐작이 간다. 바로 이런 대통령의 자세가 레임덕보다 더 걱정스럽다. 이 지경이 되어서도 자신의 잘못을 살피기는커녕 남을 공격하고, 매도하는 데 급급한 모습이다.

당면한 경제현안 해결에 매달리기보다 정치판의 대권싸움 한복판에 뛰어들어 야당 후보와 말싸움만 벌이고 있다. 경제 위기는 권력의 공백뿐 아니라 권력의 과욕에서도 빚어질 수 있다.

배정근 논설위원 jkp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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