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기에를 팝니다. 배달료는 무료. 중고제품이며 매수자는 3,000억달러의 국가채무를 떠안아야 합니다.”
최근 경매 사이트인 이베이에 등장한 이색 광고다. 벨기에를 팔겠다고 나선 사람은 벨기에의 현직 교사인 게릿 식스씨. 최근 지역 갈등으로 분열 위기에 처한 정국에 대한 항의의 표시다.
식스씨는 “이렇게라도 해서 시선을 끌 생각이었다”며 “정쟁으로 정치가 마비된 상황에 분노가 치밀었다”고 말했다.
그의 지적대로 벨기에는 100여일 이상 ‘무정부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6월 총선에서 야당인 플랑드르 기독민주당이 승리했지만, 정치적 이해가 엇갈리면서 연립 정부를 구성하지 못하고 있다.
네덜란드어를 쓰는 북부 플랑드르 지역과 프랑스어를 쓰는 남부 왈로니아 지역간의 대립의 골이 더욱 깊어진 때문이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19일 “문화적 충돌로 벨기에가 두 개로 쪼개질 수 있다”고 보도했다.
벨기에의 분열 위기는 자치권 확대를 내건 플랑드르 기독민주당이 총선에서 승리하면서 예고됐다. 이브 레테름 당수는 조세, 치안 등에 이르기까지 지방 정부의 자치권을 광범위하게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한다는 입장이지만 이는 플랑드르와 왈로니아 지역의 분리를 촉발할 수 있는 첨예한 사안이다.
플랑드르는 지식 기반 산업을 바탕으로 경제가 갈수록 부흥하고 있는 반면 철강, 석탄 등 굴뚝산업이 주종인 왈로니아는 이들 업종의 사양화로 실업률이 치솟는 등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 때문에 전체 예산의 15%를 플랑드르의 교부금에 의존하고 있다. 플랑드르에서 “왜 우리가 왈로니아까지 먹여살려야 하냐”며 ‘플랑드르 민족주의’가 대두되는 것은 이런 배경에서다.
인구도 플랑드르가 600만명으로 340만명의 왈로니아 보다 2배 가까이 많다. 최근 여론 조사에서 플랑드르 주민의 4분의 3이 벨기에가 조만간 분리될 것이라고 응답했고 절반 정도는 분리를 원한다고 대답했다.
이 같은 갈등이 실제 독립 움직임으로 이어질 지는 좀 더 두고 봐야 할 것 같다.
벨기에는 1998년에도 연립정부를 구성하는데 148일이 걸렸다. 스테판 왈흐라브 앤트워프 대학 교수는 “예전과 달리 이번에는 진전이 전혀 없다”며 “100일 이상이 지났지만 합의의 싹조차 보이지 않는다”고 우려했다.
싱크탱크인 크리스프의 카롤린 세헤서는 “분리를 논의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면서도 “하지만 그 많은 국채를 어떻게 나누고, 양측이 같이 거주하는 브뤼셀의 지위는 어떻게 할 것인지 등 분리를 어렵게 하는 장애물이 많다”고 말했다.
송용창 기자 hermee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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