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범모 / 개마고원광주비엔날레와 신정아… 한국미술 치부 訓要十條
1995년 9월 20일 제1회 광주비엔날레가 개막됐다. 한국 최초의 대규모 국제미술전으로 첫 해 180억원이 넘는 예산 투입, 200만명의 관람객 동원 등 놀라운 기록을 세운 광주비엔날레는 지난해까지 여섯 차례 개최됐다.
하지만 광주비엔날레가 요즘 새삼 주목받는 것은 행사 자체보다 신정아 학력위조 사건 때문이다. 내로라하는 미술계 인사 등 27명으로 구성된 광주비엔날레 이사회는 신정아를 2007년 비엔날레 예술감독으로 선임한 책임을 지고 총사퇴하는 부끄러운 모습을 연출했다.
한국 미술계가 도대체 왜 이 꼴이 됐을까. 신정아 사건은 크게 보면 우리사회의 여러 병폐가 드러난 문제지만, 좁혀 보면 그 시작은 ‘미술판’이다. 그 판에서는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이런 생각에 떠오르는 책이 미술평론가 윤범모(56)가 2002년에 낸 <미술본색> 이다. 미술본색>
주윤발이 주연한 홍콩영화 제목을 패러디하고 ‘우리 미술계의 일그러진 자화상’이란 부제를 단 이 책에서 윤범모가 비교적 용기있게 까발린 그 판의 치부들은, 적어도 신정아 사건으로 볼 때 지금도 여전할 뿐아니라 개선의 기미가 없어 보인다.
윤범모는 이 책에서 한국 미술계에서 ‘스타’가 되기 위한 훈요십조(訓要十條)를 들고 있다.
제1조 역사의식 같은 것은 쓰레기통에 버려라, 제2조 무조건 대국의 유행을 따르라, 제3조 무표정의 장식그림만이 살 길이다, 제4조 무슨 짓을 해서든 유명해져라, 제5조 패거리를 이뤄 인맥을 관리하라, 제6조 경력을 관리하라, 제7조 전업작가보다는 대학교수 쪽을 택하라, 제8조 책을 읽지 마라, 제9조 그림값은 멋대로 불러라, 제10조 작가정신과 속물근성을 맞바꾸라. 지독한 역설인데, 그것이 현실이라는 것이다. 신정아 사건은 그걸 증명하고 있다.
하종오기자 jo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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