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대 국내 대표적 연극인이었던 김우진이 1897년 오늘 출생했다. 우리 근대극에 표현주의 기법을 도입한 그는 윤심덕과의 현해탄 정사(情死)로 더 유명하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성악가이자 최초의 총독부 관비유학생으로 일본에 갔던 윤심덕은 호남 갑부의 아들로 전도유망한 극작가였던 동갑의 유부남 김우진을 만나 사랑에 빠지고, 1926년 8월 4일 시모노세키를 떠나 부산으로 오던 관부연락선에서 바다에 함께 몸을 던진다.
윤심덕이 그 직전 일본에서 취입한 최초의 조선어 노래가 루마니아 작곡가 이바노비치의 곡 ‘도나우 강의 잔물결’에 “광막한 광야에 달리는 인생아…”로 시작하는 가사를 붙인 <사의 찬미> 다. 사의>
“지금으로서는 강명화는 거의 잊혀진 이름이요 윤심덕ㆍ김우진이 비극적 사랑의 표상처럼 기억되고 있지만 당시대에는 그들의 죽음은 가차없이 매도되었다.” 권보드래(38)는 <연애의 시대> (2003)에서 이렇게 전하고 있다. 연애의>
강명화는 윤심덕ㆍ김우진의 정사 3년 전인 1923년, 부호의 아들과 사랑에 빠졌다가 그의 앞에서 쥐약을 먹고 자살한 기생이다.
당시 강명화는 신성한 연애의 주인공으로 숭배되었던 반면, 윤심덕과 김우진의 정사는 개인적 허영이자 ‘조선의 핏덩어리가 섬사람의 풍속을 따라가는 분한 일’로 맹렬한 비판을 받았던 것이다.
강명화와 윤심덕ㆍ김우진은 왜 죽음이라는 길을 택했을까. <연애의 시대> 는 그것을 ‘포즈로서의 자살’ ‘외래풍조로서의 정사’라고 명명하는데, 그 기원은 ‘연애라는 새로운 사회현상’에 있었다. 연애의>
이 책은 ‘연애’와 ‘연애열’이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당시의 신문 잡지 만화 광고 등을 분석해 그 시대상을 흥미롭게 되살려 보여준다. 김진송의 <서울에 딴스홀을 허하라> 이후 전봉관의 <경성기담> 등으로 이어지고 있는 식민지 근대의 사회와 문화에 대한 탐구다. 경성기담> 서울에>
하종오기자 jo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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