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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병현 전 대사의 한중수교 비망록] <34·끝> 마침내 타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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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병현 전 대사의 한중수교 비망록] <34·끝> 마침내 타결

입력
2007.09.20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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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측 대표단이 공동성명과 양해각서에 합의한 뒤 문서작업에 참여한 모든 대표들은 수교문서에 각기 이름을 남겼다. 장루이지에(張瑞杰) 대사와 나는 ‘장’과 ‘권’이란 첫 글자를 문서의 각 페이지에 남겨 교환했다. 이로써 최악의 사태가 오더라도 버틸 언덕을 마련한 셈이다.

6월21일 밤 김종휘 수석비서관이 양국 대표단을 위한 만찬을 베풀었다. 장 대사와 나는 메뉴에 각각 ‘심상사성(心想事成)’이란 축어를 써서 교환했다. ‘생각대로 일이 이루어지게 하소서’ 라는 염원으로 당시 베이징에서 유행하던 문구였다.

서울에서 합의한 공동성명과 양해각서는 7월 말 베이징에서 개최된 본회담에서 수석대표들에 의해 가서명되었다. 공동성명은 그로부터 한 달 뒤인 8월 24일 이상옥 외무장관과 첸치천(錢其琛) 외교부장이 서명해 공표되었다.

반면 양해각서는 8월 23일 한중외상회담에서 서명된 뒤 지금껏 비공개문서로 남아있다. 한국과 대만은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단교의 충격을 흡수하면서 양측 간 비공식 관계를 새롭게 정립했다.

서울 명동의 금싸라기 땅에 위치한 대만대사관과 화교학교는 대략 1만6,500㎡(5,000평)이고 현재 중국은 대사관을 재건축중이다. 베이징의 한국대사관도 비슷한 면적이다.

양해각서에서 이 부분에 대한 교섭을 직접 담당해서 타결했던 김하중 대사(당시 무역대표부 참사관)의 지휘 하에 2006년 완공돼 대사관이 입주했다. 지난 여름 김 대사가 나를 직접 안내해서 구석구석 보여준 우리 대사관은 중국 제1의 첨단정보건물(Intelligence Building)로 손색이 없다.

비록 짧은 기간에 극소수의 인원으로 교섭에 나서야 했던 제약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준비를 보다 철저하게 해서 교섭을 더 잘 했으면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예컨대 중국의 한국전 참전에 대해 보다 명확한 해명을 얻어내지 못 한 점을 아직도 아쉽게 생각한다. 또 대한제국 때부터 베이징에 있던 우리의 재산에 관한 보다 정확한 조사를 못한 점도 후회하고 있다.

중국은 양해각서 작성과정에서 당시 약 10억 달러에 달하는 명동의 주한 대만대사관 재산을 완벽하게 이양 받기를 절실히 바라고 있었다. 우리도 베이징에 한국대사관과 관련시설의 부지확보를 원하고 있었다.

그러나 장 대사는 대만정부 재산을 이양 받는 문제는 한국대사관 부지를 확보하는 문제와는 다른 성질로 이 조항의 삭제를 주장했다. 나는 서울과 베이징의 땅 문제는 모두 빼자고 역제안했다.

장 대사는 미해결 문제들을 본회담으로 넘기자고 제안했지만 나는 모든 오물과 장애물을 예비회담에서 제거하기로 한 약속을 상기시키면서 양측이 두 명의 대표를 임명, 합의를 볼 때까지 회담장 문을 잠그자고 제안했다.

우리는 김하중 참사관과 신정승 과장, 중국은 리빈 과장과 페이지아이 무역부대표를 선발해 이 문제 해결을 일임했다. 이들 4명이 마지막 난제와 씨름하는 동안 나머지 중국대표들에게는 서울 시내 관광을 시켜 주었다.

중국대표단은 먼저 남산에 올라 명동의 대만대사관을 바라보았다. 베이징에 우리 대사관과 한국학교 부지를 확보한 것은 바로 주한대만대사관 재산이양과 연계한 협상의 결과라고 자부한다.

지난 15년 동안 나는 한중수교교섭에 관해 침묵을 지켜오면서도 언젠가는 국민에게 제대로 알려야 한다는 의무감을 무겁게 느껴왔다. 3

년 전 외교통상부 외교안보연구원이 ‘(나의 회고록이) 우리 외교사를 바르게 기록하기 위한 귀중한 사료가 될 뿐만 아니라 앞으로 외교정책 당국의 실무교섭에서 기초자료가 될 것’이라면서 나에게 집필을 의뢰해 왔다.

마침 올해 한중수교 15주년을 맞아 양국에서 다양한 기념행사와 사업을 하는 것을 보고 한중수교 교섭의 모든 과정을 알릴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던 참에 한국일보가 귀중한 지면을 할애해주었다.

연재하는 동안 베이징 제1차 예비회담에서부터 서울의 제3차 예비회담까지 전 과정을 나름대로 정확하게 독자들에게 전달하려고 노력을 했으며 교섭과정에서 내가 기록한 3권의 일기 중 첫 권의 일기가 소화됐다. 본회담과 외상회담, 그리고 대만과의 관계 정리와 관계국에 대한 통보, 명동 땅 문제와 언론대책 등 본격적인 수교 준비과정과 절차는 이번 연재에서 유보했다. 나는 역사를 기록하는 사관의 심정으로 이 같은 기록들을 잘 정리해 책으로 펴낼 생각이다.

한중문화청소년협회(미래숲)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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