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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정치적 섹스 스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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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정치적 섹스 스캔들

입력
2007.09.20 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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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불거진 영국의 프로퓨모(Profumo) 사건은 정치적 섹스 스캔들의 상징으로 남아있다. 귀족 출신인 프로퓨모는 옥스퍼드를 나와 25살에 최연소 하원의원이 된 뒤 정부 요직을 거쳐 전쟁장관에 오른 48세의 명망가였다.

그의 상대 크리스틴 킬러는 미천한 시골 출신으로 10대 때 가출, 카바레 섹스 쇼걸로 일하던 21살 된 고급 콜걸이었다. 그러나 이런 선정적 요소에도 불구하고, 희대의 스캔들이 된 것은 이변이었다. 그때까지 영국사회는 정치인의 사생활을 시비하지 않았고, 지금은 '섹스에 미친'(sex crazed) 도색(桃色) 대중신문도 점잖은 사회 관행을 좇던 시절이다.

■ 상류사회 가십에 그칠 일이 보수당 정권 붕괴에 이른 것은 냉전의 그늘 때문이다. 런던 주재 소련 무관도 킬러의 단골로 알려지자 안보기밀 유출의혹이 세상을 뒤흔들었다.

그러나 후세의 평가는 아주 다르다. 당시 영국사회는 오랜 금서 <채털레이 부인의 사랑> 이 법정다툼 끝에 출간되고, 비틀스 음악이 선풍을 일으킨 직후였다. '도덕적 해방'에 기꺼워하던 사회가 심리 저변의 청교도적 도덕주의에 일순 매몰됐다는 분석이다. 근본은 위선이라는 지적이다.

■신정아ㆍ변양균 사건도 섹스 스캔들과 권력비호 의혹이 함께 얽힌 정치적 섹스 스캔들이다. 청와대 깊숙한 곳에 이른 의혹이 진지하게 천착할 본질이지만, 스캔들 주연과 숨은 조연을 잇는 섹스 스캔들을 언론의 천박한 호기심이 만든 환상으로 여길 수는 없다.

개인이든 언론이든 각기 다른 취향과 의식과 품격에 따라 스캔들 성격을 규정하고 내막에 관심 기울이는 것은 자연스럽다. 영국 신문이 세계 최고 권위지와 최악의 대중지로 분화한 것과 달리, 우리는 권위와 선정성을 동시에 좇는 관행에 머물러 있다. 언론의 상업주의와 함께 사회가 그만큼 위선적인 때문일 것이다.

■연분홍색을 뽐내던 신문이 막연한 연상 효과는 몰라도 '증거'가 될 수 없는 누드 사진을 자랑스레 실은 것도 그런 시각으로 볼 만하다.

피의자 인권을 침해한 과오와 사건을 섹스 스캔들로 축소하는 어리석음은 비난 받을 일이다. 그러나 진보적 언론ㆍ여성ㆍ시민 단체들이 일제히 나서 폐간을 외치는 열정을 보인 것은 어색하다.

일개 상업신문 규탄에 정력을 쏟기에 앞서, 국민이 맡긴 권력과 세금을 음습한 곳에 쓴 의혹을 밝히라고 청와대나 검찰청 앞에서 시위할 일이다. 언론재단까지 긴급 토론회를 열고 섹스 스캔들이 아니라고 떠드는 것은 정말 우습다.

강병태 논설위원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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