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민중의 생활이며 경제이며, 경제의 직접적 담지자는 민중이다.” (박현채 <민족경제론> ) 민족경제론>
신자유주의가 압도하는 지구화의 시대에 박현채 사상의 의미는 무엇인가? 성공회대 민주주의와 사회운동연구소(민사연)와 한국농어촌사회연구소가 21일 개최하는 박현채 전집출간 기념토론회는 민족경제론을 주창한 진보적 경제학자 고 박현채(1934~1995) 사상을 재조명하고 그것을 어떻게 계승ㆍ발전시킬 것인가를 묻는 자리다. 지난해 고인의 전집(전 7권)이 완간된 뒤 1년 만에 마련된 토론회다.
박현채 사상의 핵심인 민족경제론은 1960, 70년대 외자(外資)에 의존하는 수출주도 성장제일주의 전략에 대한 대항이론으로 우리 경제의 과도한 해외의존도와 일제식민지 경제의 유산을 극복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국민경제 안에서 외국자본의 활동영역을 부정하며 국가의 개입을 긍정하는 것이 골자로, 자기완결적인 재생산구조를 갖춘 자립경제를 수립해야 한다는 것이다. 1971년 대통령 후보로 나섰던 김대중 전 대통령의 대중경제론의 이론적 기반이 되기도 했다.
북한의 사례에서 보듯 자력갱생이란 환상에 불과하다는 것이 입증됐고, 외국자본이 주식시장의 40% 이상을 차지하고 무역의존도가 60% 넘는 통상국가로 변화한 현재 한국경제의 지향점을 제시하는 패러다임으로서의 민족경제론의 가치는 상실됐다. 그러나 발표자들은 박현채 사상에 녹아있는 대안적 상상력에 주목한다. 그의 사상이 내포한 민중지향성, 통일론으로서의 성격, 국민경제의 공공적 성격의 강조 등은 자본주의의 모순을 극복할 수 있는 상상력의 단초가 된다는 것이다.
장상환 경상대 교수는 발제문 ‘지구화 시대의 자립경제ㆍ민족경제론’ 에서 기간산업부분에서 사회주의 경제계획을, 여타부문에서 시장경제원리의 도입을 주장한 그의 생각에 주목한다. 이는 생산대중의 실질적 민주주의를 보장하는데 관심을 놓지않은 박현채 사상의 핵심을 보여준다는 것. 민주화의 의미가 사회경제적 시민권의 확보라면, 중소기업과 노동자들의 임금을 압박해 이윤극대화를 꾀하는 재벌과 외국자본에 대해 적절한 규제를 가하는 것은 박현채 사상의 현대적 재해석이라며 장 교수는 논의를 확장한다.
박승욱 시민발전 대표는 ‘석유정점과 한국경제’ 라는 발표문에서 한국경제의 과도한 석유의존적 에너지 소유구조를 깨는 일이 박현채의 경세제민(經世濟民) 사상을 실천하는 일이라고 주장한다. 발표문에 따르면 미국은 경제개발계획 초기부터 한국경제를 석유의존적구조로 변환시켰는데 그 결과 현재 한국은 96.8%의 에너지를 수입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그는 석유공급이 조금만 줄어도 산업의 급속한 붕괴와 풀뿌리 민중들의 희생이 잇따를 것이라고 경고하며 경제구조의 생태적 전환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이밖에 와쿠이 히데유키(涌井秀行) 일본 메이지대 교수는 자립경제를 주장했던 박현채의 사상을 원용, 미국의 달러경제에 종속된 일본을 ‘아시아 합중국’ 이라 지칭하며 일본의 대미의존성 극복의 당위성을 설파하고, 권영근 한국농어촌 사회연구소 소장은 자립경제의 대안적 모델로서 쿠바의 사례를 소개한다.
조희연 민사연 소장은 “박현채 선생의 이론은 지구화 시대에서 국민경제가 공공성을 어떻게 담지해야하느냐에서 시사적”이라며 “한국의 진보적 이론과 실천에 있어 중요한 역사적 자원인 박현채의 유산을 비판적으로 계승ㆍ발전시키기 위한 민족경제연구소의 설립을 서두르겠다”고 말했다.
이왕구 기자 fab4@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