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올 때 우산을 빼앗지 않은 곳. 기업들, 특히 중소기업에게 경기가 좋지 않다고 여지 없이 대출을 줄이고 회수하는 은행은 ‘저승사자’의 모습일 것이다.
지난 해 한국개발연구원(KDI) 보고서에서도 저승사자 같은 은행들의 관행이 확인된 바 있다. 비 올 때 기업들의 우산을 빼앗지 않고 받쳐주는 것이 은행의 주요 존재이유라면, 기업은행은 국내에서 그 ‘착한 본질’에 가장 근접해 있다고 할만하다. 중소기업 대출 시장점유율 1위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기업은행은 종합금융그룹으로서 발돋움을 시작했다.
창립 당시 자본금 2억원, 점포 31개, 직원 수 935명에서 지난 3월 말 기준 총자산 110조 9,893억원, 직원 수 9,200여명, 국내외 점포 수 509개의 대형은행이 되기까지 기업은행은 국내 중소기업들과 함께 성장해왔다.
1961년 중소기업 금융지원을 목적으로 설립된 뒤 지난 해 말 기준으로 은행권의 전체 중소기업 대출 시장점유율을 19.3%까지 끌어올렸다. 부동의 1위다. 46년간 중소기업금융의 경험과 노하우를 쌓으면서 전문 심사기법을 보유한 600여명의 심사역 등 막강한 중소기업금융 전문인력을 보유하고 있다.
기업은행은 ‘비올 때 우산을 받쳐주는 역할’에 어느 은행보다 충실하다고 자부한다. 2004년 이후 경기침체로 다른 은행들이 중소기업 지원을 꺼릴 때 기업은행은 치밀한 예측과 적극적인 자세로 중소기업을 지원해 왔다. 네트워크론, 위너스론, 패키지론, e-branch(기업자금관리서비스), 사업자전용통장 등 중소기업을 위한 다양한 상품과 서비스를 개발해왔다.
매년 초 중소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을 초청해 개최하는 중소기업지원설명회,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중소기업 CEO들의 자긍심을 담아 2004년 건립된 ‘중소기업인 명예의 전당’, 이들의 성공기를 다룬 책 ‘Success Story’ 발간 등은 기업은행의 지원이 단순한 물질적 수준에 머무르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올해는 설비투자 자금 7조원, 혁신형 중소기업 금융서비스 등 총 25조원을 중소기업에 지원할 예정이다. 최근에는 충주중원산업단지, 천안 풍세지방산업단지와 김포 소규모공단, 양산어곡공단 조성에 나서 사업장 환경이 열악하거나 임차사업장으로 업태가 불안한 중소기업에 대해 자가 사업장 마련의 기회까지 제공하고 있다. 입주기업에 대한 자금관리 및 경영컨설팅 등의 부대서비스 제공과 함께 자금을 지원하게 된다.
기업은행은 올해 한껏 고무돼 있다. 상반기 실적에서 도약이 두드러졌기 때문. 당기 순익이 2분기에 3,206억원, 상반기 전체로는 8,450억원을 기록했다. 상반기에만 올 전체 순익 목표치의 70% 이상을 달성한 것이다. 일회성 수익인 LG카드 주식 매각 이익을 빼더라도 올 상반기 5,785억원의 순익을 기록해, 지난해 상반기보다 11.8% 증가했다. 총자산도 2011년까지 현재의 두배인 220조원으로 늘린다는 목표다
순익 증가율 면에서도 국내 5대 은행 중 가장 뛰어난 실적을 올렸다. 총자산이익률(ROA)과 자기자본이익률(ROE)도 각각 1.56%와 27.75%로 높아져, 신한은행과 수위를 다투고 있다. 특히 대표적인 수익성 지표로 꼽히는 순이자마진(NIM)의 경우 주요 은행들이 하락 또는 정체를 보였지만, 기업은행만이 나홀로 상승했다.
은행의 대형화, 겸업화, 글로벌화가 선택이 아닌 생존을 위한 필수조건이 된 상황에서, 기업은행은 자산규모 100조원을 달성한 현재 시점이 증권, 보험, 카드, 자산운용 등 종합금융그룹 체제로 전환하기 위한 적기로 판단하고 있다. 2004년 자회사로 기은SG자산운용을 설립하고 2005년 한국투자증권과의 전략적 제휴를 체결한 것은 그 시작이었다. 역량을 집중하고 있는 증권업 진출은 종합금융그룹으로 거듭나려는 기업은행의 날개가 될 전망이다.
■ 연임 신화 강권석 기업은행장
“중소기업인 명예의 전당 제정 가장 자랑스러워”
금융계 최고의 요직으로 꼽히는 국책은행장에 연임되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경제관료 출신인 강권석(사진ㆍ 57) 기업은행장은 올해 3월 연임되면서 '연임 불가' 불문율을 깼다. 취임 후 자산 100조원 돌파, 순익 1조원 클럽 진입 등의 성과가 그 이유를 쉽게 말해준다.
그러나 강 행장이 가장 아끼고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성과는 이 같은 수치가 아니다. 행장으로 취임했던 2004년 처음으로 도입해 올해로 네 번째를 맞는 '중소기업인 명예의 전당'이 가장 자랑스럽다. 강 행장은 "보통 사람들은 기업하면 삼성, 현대 등 대기업을 생각한다"며 " 우리 중소기업 중에도 훌륭한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거나 시장 점유율면에서 세계 1, 2위를 다투는 곳이 많다"고 말했다.
'중소기업 명예의 전당'은 스웨덴 노벨기념관에 있는 노벨상 수상자들의 자료와 부조, 기념상 등을 보고 착안한 것으로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열심히 일하는 중소기업인들에게 자부심과 보람을 느끼게 해주자는 취지로 만들어졌다. 그것이 이제는 그의 자부심과 보람이 됐다. 반면 행장으로서 가장 힘든 때는 중소기업의 희로애락을 알면서도, 여러 제약으로 마음껏 지원을 해줄 수 없을 때라고 한다.
중소기업들에 대한 이 같은 애정을 바탕으로 강 행장은 임기 중 기업은행을 종합금융그룹의 위상으로 끌어올리려는 구상을 가지고 있다.
그는 지난 달 창립 46주년 기념식에서 '대한민국 최고의 종합금융그룹 IBK -글로벌 50대 선도금융그룹'으로 라는 비전을 내걸었다. 강 행장은 "지난 3년간 최선을 다한 결과 자력으로 자산 100조원 시대를 열어 '비전 2007'의 글로벌 100대 은행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다"며 "새로운 비전으로 다시 한번 똘똘 뭉쳐 국내 최고의 종합금융그룹으로 도약하자"고 말했다.
■ 이것이 '기업'의 강점
16만개 중기 네트워크…IB 잠재고객 최다
투자은행(IB)으로 거듭날 수 있는 환경이 이보다 좋을 수 있을까. 기업은행을 두고 하는 말이다. 자본시장통합법 시행으로 국내 은행들도 골드만삭스, 메릴린치와 같은 IB로 거듭날 꿈에 부풀어 있는 가운데, 기업은행이 가지고 있는 중소기업 네트워크는 큰 강점이 아닐 수 없다.
기업은행은 16만개의 중소기업과 거래하고 있고, 이들 중 기업공개(IPO)를 원하는 수가 현재 1,150개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제임스 퀴글리 메릴린치 회장은 국내 은행들에게 "한국 기업들을 상대로 IB역량을 쌓은 뒤 점진적으로 아시아, 그리고 세계로 나아가야 한다"고 조언한 바 있는데, 기업은행은 그 같은 역량을 쌓기에 가장 좋은 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기업들의 인수ㆍ합병(M&A), 상장, 채권 발행 등을 투자은행의 주요업무로 볼 때 기업은행은 잠재적 고객이 가장 많은 은행이기 때문이다.
특히 IB분야의 중점전략으로 내년부터 '1영업점 1투자기업 갖기 운동'을 펼쳐, 2011년까지 2,000개 업체에 대한 '수종(樹種)투자'에 나서기로 했다. 수종 투자란 미래의 이익 및 성장동력 확보를 위하여 미리 폭 넓게 투자를 해놓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위해 17만개에 이르는 중소기업 고객기반 및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있다. 상반기 35개 업체에 투자를 진행했으며, 올해 총 115개 업체에 투자를 진행할 예정이다. IB본부에서는 IB마인드 고취를 위해 지역본부 순회교육도 실시하고 있다.
기업은행이 증권사 인수나 설립을 적극 추진하고 있는 것도 중소기업 IB시장을 선점하려는 이유에서다. 기업은행측은 "고객인 중소기업들의 기업어음(CP)업무와 M&A 등 IB업무에 특화된 증권사를 인수하거나 설립할 생각"이라며 "증권사는 신설 또는 인수의 장단점을 신중히 검토하여 결정할 사항이며, 주주 구성 문제도 있어 정부와 협의 후 조만간 입장을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진희 기자 riv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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