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교교섭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면서 ‘공동성명’과 동시에 교섭, 서명하는 하위급 문서라 할 수 있는 ‘양해각서’의 교섭과정을 제외시켜서는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동성명은 대내외에 공개된 문서이지만 양해각서는 그 동안 공개된 적이 없다. 양해각서 또한 정당한 절차에 의해 교섭했다는 사실을 떳떳이 국민에게 알리는 의미에서 적절한 선에서 밝혀두고자 한다.
6월 20~22일 제3차 서울 예비회담에서 먼저 공동성명의 교섭을 끝내고 난 후 양측대표단은 곧 양해각서의 교섭에 들어갔다. 이에 앞서 19일 저녁 넘겨받은 중국의 안은 ‘양해비망록’이란 이름의 5개항으로 되어 있었다. 양측 문안이 제목부터 내용에 이르기까지 너무 달라 난항이 예상되었다.
그날 밤 우리 대표단을 소집하여 검토해 본 결과 중국측이 양해비망록에서 원하는 사항은 단 두 가지, 즉 대만문제와 한국 내 대만대사관 재산문제 뿐이었다. 우선 양측 안을 합해 단일본을 만들어 다음날 문안협상에 임했다.
공동성명 문안교섭에서 제외한 부분과 공동성명 대신 양해각서에 포함하기로 한 부분을 합해 우리가 제2차 단일본을 만들었다. 중국측 안을 모아 우선 대만관계 내용을 앞에 수록했다. 이어 대만에 대한 우리측 내용을 별항으로 수록한 뒤 주한대만대사관 재산에 관한 중국측 문안과 베이징에 세울 한국대사관의 시설 및 부지 문제를 앞뒤에 별항으로 배치했다.
20일 밤 10시30분 이상옥 장관과 김종휘 외교안보수석, 안기부 K차장이 대표단 숙소에서 3자 회의를 가졌다. 나는 공동성명 교섭내용을 상세히 보고함과 동시에 다음날 양해각서 교섭에 내놓을 제2차 단일본에 대해 설명했다. 3자 회의는 이의 없이 대표단의 보고사항을 양승했다.
이렇게 재작성한 우리측의 제2차 단일본을 21일 아침 중국대표단에 넘겨주었고 오전 9시30분 양해각서 문안교섭이 시작되었다. 먼저 양측은 ‘대한민국정부와 중화인민공화국정부간 수교에 관한 양해각서’ 라는 명칭을 정하고 양해각서는 비공개로 하기로 합의했다.
대만조항에서 입장에 간격이 있었으나 제1, 2차 예비회담과정에서 충분히 협의된 내용에 따라 중국측 입장을 대부분 수용하되 중국측도, 그러한 표현이 양해각서에 반영되든 안 되든, 한국측이 앞으로 대만과 최고 수준의 비공식 관계를 가질 것이라는 점을 사실상 양해하는 선에서 타협하였다.
이 부분은 그 뒤 한국이 대만과 새로운 관계를 설정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양해각서에 포함된 내용은 우리가 대만과 비공식 관계를 갖는데 하나의 ‘네거티브 리스트’, 즉 하지 말아야 할 항목을 나열한 것이고 나머지는 한국측이 독자적으로 최고 수준의 비공식 관계를 갖는다는 의미이다.
‘양해각서’는 전문과 8개항으로 된 비공개문서로 난항을 거듭한 끝에 어렵게 타결 되었다. 한중수교로 한국정부가 대만과의 관계에 있어서 취할 조치들과 함께 한국이 수교협상과정에서 합의한 ‘하나의 중국’ 원칙의 몇 가지 구체적 사항을 명시해야 했다.
한중간 외교관계가 수립되면 한국 내 대만대사관의 토지와 건물은 국제법과 국제관례에 따라 중국정부에 이양되는 것도 인정되어야 했다. 또 한중수교 후 베이징의 한국대사관과 관련시설의 부지로 사용할 필요한 대지를 중국정부가 호의적인 조건으로 제공토록 협조를 받아야 했다.
아울러 한중수교가 가져올 충격을 흡수해가면서 한국과 대만 간 여러 협정이 폐기된 후 국민에게 나타날 수 있는 피해와 불편을 피하기 위해 한국측이 취할 잠정조치에 대해 중국측의 양해도 받아두어야 했다.
특히 한국과 대만간 항공관계가 민간차원에서 상업적으로 계속 유지되는 것을 확인받아야했다. 한중수교 후 한국이 대만과 협의하여 갖게 될 경제, 무역, 문화 등의 비공식관계에 대하여는 중국측이 이의를 제기하지 않아야 했다.
대만 관련 문제 이외에 한중 양국정부가 다방면에 걸친 협력과 교류를 더욱 확대하기 위하여 여러 분야의 정부 간 협정체결에 필요한 회담을 조기에 개최하고 기존 민간협정을 조속히 정부간 협정으로 대체하여야 했다.
양해각서를 비공개로 할 것을 주장한 것은 중국측이었다. 우리로서도 몇 가지 현실적인 필요성은 인정했다. 수교에 관한 공동성명을 발표한 날로부터 한국정부가 대만과의 외교관계를 단절하고 대만과 체결한 모든 정부간 협정을 폐기하며 대사관과 영사관을 철수하는 부득이한 조치를 취하는 것은 수교의 불가피한 수순이다.
다만 이 과정에서 충격을 가급적 완화하면서 새로운 비공식 관계가 정립되기까지 잠정기간 불필요한 문제를 야기하지 말아야 했으며 대만을 불필요하게 자극할 필요도 없었다.
한중문화청소년협회(미래숲)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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