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년 전 경찰서 기자실을 떠나온 후, 나는 기자실에 들어가 본 적이 없다. 그 후 기자실이 필요하지 않은 국제부와 문화부에 근무했기 때문이다. 오래 전 기억을 지금 기자실에 대입하는 것은 무리겠지만, 당시 기자실은 푸근하고 편리한 공간이었다.
그러나 그 푸근함과 편리함은 상당한 배타성과 폐쇄성이 작용한 결과이기도 했다. 배타성은 선ㆍ후배 사이에도 존재하고, 회사 간에도 작용되고 있었다. 예를 들면 통신사 기자는 출입을 못한다든가 하는 식이다.
● 계속되는 政言 간 갈등
정부와 언론기관 사이에 갈등이 계속되고 있다. 이 정부 들어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5월 정부가 '취재지원 시스템 선진화 방안'을 발표하고부터 갈등이 폭발하듯 증폭되었다.
정부가 중앙부처 기자실을 통폐합하고, 기자의 정부 사무실 출입을 제한한다는 것이다. 이유는 과거에 비해 엄청나게 늘어난 지방언론ㆍ인터넷언론ㆍ신생언론 등의 기자를 각 기자실에서 모두 수용할 수도 없고, 공무원들도 일일이 응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한다. 대신 브리핑제도가 확대되고 새로운 전자브리핑도 도입된다.
그러고 보면 3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 기자실의 배타성ㆍ폐쇄성 문제는 내연해 온 셈이다. 여기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공무원에 대한 취재제한 문제다.
많은 언론단체가 정부를 비판했다. 신문방송편집인협회는 편집ㆍ보도국장 긴급회의를 열고, 알 권리를 제한하는 정부 조치는 '군사정권 시절보다 질적으로 더 나쁜 언론 탄압'이라고 비판했다.
기자협회나 언론노동조합 등 48개 언론ㆍ시민단체로 이뤄진 언론개혁시민연대는 다른 입장을 보였다. 이들은 브리핑룸과 기사 송고석의 통합은 원칙적으로 찬성하나, 보완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공무원 면담 시 협의하도록 한 조항과, 접견실에서 공무원을 면담하고 보고하도록 한 규정은 삭제해야 한다고 반대했다. 그 후 정부가 이런 요구를 수용했지만, 직접 만날 수 있는 공무원은 실ㆍ국장급 이상으로 제한하는 등의 장벽은 남아 있다.
정부가 취재 선진화를 지원하는 것이 본심이라면, 사소한 것을 고집하고 일방적으로 밀어붙여서는 안 된다. 기자실 문제부터 시간이 걸리더라도 오래 된 매체와 신생 매체 간의 갈등을 언론사 스스로 해결하게 하고, 옆에서 적극 지원하는 방식이 현명했을 것이다. 정부가 더 큰 갈등을 불러들인 형국이 되었다.
그러나 정작 언론과 관련해서 심각한 문제는 따로 있다고 생각한다. 대다수 언론이 보수화, 권력화하는 경향이 우려스럽다. 현재 일부 보수적 신문과 정당ㆍ사회단체 사이에 정서적ㆍ이념적 공감대가 형성돼 있고, 다른 언론도 그 쪽으로 선회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중도ㆍ진보를 표방하는 언론도 특정 주제에서만 원칙을 지킬 뿐, 전체적 각도는 많이 우측으로 기운 것이다. 대선 과정을 통해 이런 경향은 더 굳어지는 것으로 보인다.
최근 유시민 의원은 언론에 대한 공포심을 털어놓았다. 그는 "일부 힘 있는 언론이 국민의 알 권리 증진을 위해 공정한 자세를 취하고 있느냐는 것은 생각해 볼 문제"라면서 "솔직히 겁이 나서 더 이상 말을 못할 지경이며, 모든 정치인이 언론 앞에 기가 질려 있다"고 하소연했다. 평소 겁 없어 보이는 그도 엄청난 두려움을 느낀다는 고백은, 언론이 그의 정치철학을 밉게 보아서만은 아닐 것이다.
● 더 심각한 언론의 보수ㆍ권력화
정언유착도 문제지만, 언론이 공포의 대상이 되는 것은 민주주의를 위해 더 불행한 일이다. 권력을 지닌 정치인도 그렇다면, 전체 사회에서 언론의 위상은 날로 강고해지고 있다는 얘기다.
최장집 교수도 "민주주의의 형식적 틀 안에서 언론이 실제 정치과정을 압도하고 있고, 언론이 결국 유사 대표체제가 되고 있다"고 권력화를 비판한 바 있다. 언론은 환경 감시와 함께 스스로에 대해서도 심각하게 성찰해야 한다.
박래부 논설위원실장 parkr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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