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양균(58) 전 청와대 정책실장에 대한 검찰 수사가 예상 밖의 난관에 봉착한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전격적인 소환이 무색할 정도로 변 전 실장이 유유히 검찰 청사를 떠났는가 하면 갑자기 대검 중수부 수사 인력이 대거 파견되는 등 이상 징후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변 전 실장과 신정아씨에 대한 서울서부지검의 수사는 16일이 중요한 분기점이었다. 그 동안의 압수수색과 참고인 소환 단계를 지나 의혹의 핵심 당사자들에 대한 소환이 이뤄진 날이기 때문이다. 통상적인 검찰 수사에서 핵심 참고인의 소환은 사법처리의 직전 단계로 인식되곤 했다.
신정아(35)씨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에는 별 다른 문제가 없을 전망이다. 신씨가 미국 예일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음을 증명할 수 있는 물증 확보에 실패한 것으로 나타나면서 업무방해 등 혐의 적용에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는 것들은 사라졌다.
문제는 변 전 실장이다. 침통한 표정으로 검찰에 출석했던 변 전 실장이 17일 새벽 돌연 귀가 조치되는 돌발 사태가 발생했고, 검찰은 “재소환 할 것”이라는 말만 되풀이 하고 있다. 이와 맞물려 검사 3명을 비롯한 대검 중수부의 상당수 수사 인력이 서부지검에 파견되는 등 전격적인 수사팀 보강이 이뤄졌다. 서부지검의 수사가 난관에 부딪쳤음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이와 관련, 법조계에서는 “검찰이 변 전 실장과 신씨에게 허를 찔린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변 전 실장과 신씨 소환에 대비한 검찰의 준비가 미비한 상황에서 이들이 전격적으로 검찰 출석 및 귀국 결정이라는 ‘선제 공격’을 했을 수 있다는 얘기다. 실제 변 전 실장의 검찰 출석과 신씨의 귀국이 같은 날 이뤄지고 두 사람의 변호인 사무실이 같은 건물, 같은 층에 있다는 점 등은 양자간 사전 조율 가능성을 강하게 시사하고 있다. “신씨가 이렇게 빨리 귀국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주로 변 전 실장의 진술을 들었다”는 구본민 서부지검 차장검사의 발언도 이 같은 가능성을 뒷받침하고 있다.
이는 검찰이 아직까지 변 전 실장을 추궁할 근거나 명확한 물증을 확보하지 못했다는 의미로도 풀이된다. 실제 개인 행적에 대한 비난과는 별개로 변 전 실장에 대한 법리 적용에는 애매한 부분이 적지 않다. 변 전 실장이 “신씨의 학력 위조 사실을 몰랐다”고 주장할 경우 그가 동국대 교수나 광주비엔날레 예술총감독으로 신씨를 추천한 부분을 문제 삼기는 어려워진다. 정부 부처나 금융기관, 기업들에 대한 미술품 매입이나 전시 후원 외압 의혹도 “외압을 넣은 적이 없다”거나 “미술 애호가인 내게 좋은 미술품을 싸게 매입할 수 있는 방법을 문의해와 소개해 줬을 뿐”이라는 항변 앞에서는 빛을 잃을 수 있다. 기업 관계자 등으로부터 “압력이 있었다”는 진술을 확보하기도 쉽지 않아 보인다. 변 전 실장이 소환될 경우 이는 검찰이 결정적 물증을 확보했기 때문일 것이라는 관측이 있어왔지만 소환 이후의 정황을 보면 관측이 틀렸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만일 이번 사건의 ‘1차적 몸통’인 변 전 실장을 사법처리하는데 실패할 경우 검찰은 엄청난 비판에 직면하게 될 전망이다. 이 경우 물증도 없는 상태에서 청와대에 변 전 실장과 신씨간 이메일 내역 등을 섣불리 보고해 변 전 실장이 시간만 벌게 해줬다는 비판이 제기될 수도 있다. 검찰은 변 전 실장 연루 의혹이 제기된 지 3주가 지나서야 신씨 주거지에 대한 압수수색을 하는 등 늑장수사 의혹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검찰은 변 전 실장의 사법처리에 총력을 기울일 것으로 보이지만 물증이나 진술 확보 여부는 미지수여서 사법처리를 자신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박진석 기자 jseo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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