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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피어폰트 모건과 한국 재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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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피어폰트 모건과 한국 재벌

입력
2007.09.18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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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년 10월 24일 오전. 미국 뉴욕증권 거래소 이사장인 랜섬 토머스는 월 스트리트를 가로질러 맞은편에 있는 J.P.모건은행으로 달려갔다. 토머스는 당시 금융황제로 군림하던 피어폰트 모건 J.P.모건 회장에게 "오늘 중으로 2,500만달러가 조성되지 않으면 증권사 50여곳이 줄줄이 파산하게 된다"고 하소연했다.

피어폰트 모건은 거래소가 3시에 마감된다는 것을 확인하곤 주요 은행장들을 오후 2시에 긴급 소집했다. 그는 은행장들이 모인 지 불과 16분만에 필요한 액수를 조성, 투신사들의 무분별한 대출 행위로 빚어진 금융시장의 패닉 현상을 타개했다.

피어폰트 모건은 19세기 중반 이후 세계 최대 금융그룹을 형성한 J.P.모건(현재 J.P.모건체이스 앤드 컴퍼니로 바뀜)의 2대째 회장이었다. 부친 주니어스 모건의 타계 후 미국과 유럽의 막강한 금융 네트워크를 승계한 그는 영국 채권의 미국 내 유통과 철도, 철강, 자동차산업에 대한 투자, 부도 위기를 맞은 연방정부가 발행한 채권 인수 등으로 미국 최고의 갑부가 됐다.

그는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1913년 출범하기 전까지 '살아있는 중앙은행'이었다. 월 스트리트에 예금인출 사태가 발생할 때마다 피어폰트 모건은 은행가들을 소집해 구제금융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모건은 말년에 철도, 철강회사의 통폐합과 금융회사간 트러스트를 주도했다는 이유로 정부와 언론으로부터 비판을 받고, 의회 청문회에 서는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그는 유럽의 미술품을 미친 듯이 사들인 것으로도 유명하다. 최고의 컬렉션을 구성하기 위해 한 시대, 한 조류, 또는 한 지역의 작품을 차떼기하듯이 매입했다. 나폴레옹 시계,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노트, 셰익스피어의 육필 원고, 로마 황제들의 두상이 새겨진 로마동전 등 총 4,100여점에 달했다.

1904년에는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의 이사회 의장을 맡아 유럽의 유수한 작품을 매집했다. 유럽문화를 직접 체험할 기회가 없는 미국인들에게는 축복 같은 일이었다.

그가 남긴 컬렉션 일부는 엄청난 상속세를 내야 하는 그의 아들 잭 모건에 의해 일부 팔리기도 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작품이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과 그의 고향 매사추세츠주 하트퍼드의 워즈워드 아테니엄 등에 기증됐다.

한국 재벌들은 어떤가? 주요그룹은 총수들의 비자금 사건과 편법 상속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수천억원의 사재 헌납 카드를 내놓았다. 정몽구 현대ㆍ기아차 회장은 최근 비자금사건과 관련,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 받으면서 법원으로부터 2013년까지 매년 1,200억원씩 8,400억원을 저소득층에 쓰라는 판결을 받았다.

재벌들이 매년 많은 돈을 사회복지기관 등에 기탁하고 있지만 반(反) 기업인 정서는 해소되지 않고 있다. 천문학적인 돈을 벌게 하는 '저수지'인 국가와 사회를 위한 '기부문화'가 미흡한 탓이다.

상당수 재벌들이 갤러리를 운영 중이지만 오너 부인들이 취미 삼아 하는 게 대부분이다. S그룹 총수 부인이 운영하는 갤러리는 경비가 삼엄한 고급 주택가에 있어 일반인의 접근이 어렵다. 기업인들이 국민적 존경과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쓰는 법'과 기부 문화에 대해 더욱 많은 고민을 했으면 한다.

경제산업부장 이의춘 ec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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