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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 투기세력과 석유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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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 투기세력과 석유시장

입력
2007.09.17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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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에 새로운 전쟁이 벌어지지도 않았다. 멕시코만 유전시설이 허리케인에 휩쓸린 것도 아니다. 미국 경제는 금리인하가 불가피하다고 여겨질 만큼 불안하고, 세계 경기둔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까지 확산되는 상황이다.

상식적으로 유가가 급등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8월22일 배럴당 69.47 달러(9월 인도분)까지 하락세를 탔던 서부텍사스중질유(WTI)는 불과 20일 만인 9월13일 현재 명목가치로는 사상 최고치인 배럴당 80.09 달러까지 치솟으며 '유가 80 달러 시대'를 열었다. 이제 한국을 포함한 세계 각국은 눈 깜짝할 사이에 배럴당 10달러나 오른 유가를 기반으로 경제를 운용해야 하는 상황에 빠졌다.

● 투기세력에 휘둘린 시장

20일 동안 유가가 무려 15%나 급등한 이례적인 '극적 반전'을 설명하기 위해 여러 가지 요인들이 거론되고 있다. 미국의 최근 원유재고 감소, 허리케인 불안감의 상존, 겨울철 난방유 수요가 시작되는 계절적 요인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원유 재고량이야 늘 움직여왔던 것이고, 허리케인 우려나 난방유 수요 역시 늘 반복돼왔던 얘기로 최근의 유가급등을 뒷받침하는 근본 요인으로 보기엔 어려움이 있다.

이런 가운데 시장 전문가들은 지난달 9만1,000 계약이었던 뉴욕상품거래소의 원유 선물거래가 최근 13만2,000 계약으로 폭증한 점에 주목하고 있다.

선물거래건수의 급증은 미래의 원유가격 변동에 따른 손실 위험을 감소시키기 위한 실재 수요자들의 통상적 거래 외에, 단기차익을 노린 핫머니가 석유시장에 몰리면서 가격을 흔들었다는 분석에 힘을 실어준다.

상품시장 관련 보도에 따르면 석유시장의 투기자본들은 보통 수십억 달러 규모의 펀드가 떼거리로 움직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올 들어서만 약 1,000억 달러가 원유 투기에 투입됐다는 얘기까지 나돌고 있다.

물론 시장에서 투기는 어제 오늘의 현상은 아니다. 하지만 불과 10여년 전까지만 해도 투기세력은 헤지펀드 등 일부의 '튀는 집단' 정도였으나, 최근엔 공격적인 파생상품 투자가 일반화하면서 위험상품 투자가 엄격히 제한되는 보수적인 연기금까지 포함해 시장 참여자 대부분이 공격적인 '투기'에 나서면서 덩어리가 커지고 있다는 게 문제다.

공격적 투기가 보편화하면서 과거 조지 소로스 같은 투기 '스타 플레이어'의 움직임은 오히려 잦아든 모습이다. 하지만 시장의 투기화는 더욱 광범위하게 확산돼 외환이나 채권 같은 금융상품은 물론, 원유와 비철금속 등 원자재까지 이르고 있어 가격불안이 확산되고 있다.

실제로 올 들어서만 해도 비철금속 가운데 납은 95% 이상 폭등했고, 곡물인 밀도 60%까지 치솟았다. 이밖에 콩과 구리 가격도 각각 29%, 23%나 급등했고, 최근엔 금값이 가파른 상승곡선을 타고 있다.

● '꼬리'가 몸통 흔드는 경제

'웨그 더 독(wag the dog)'이라는 말이 있다. 강아지가 꼬리를 지나치게 흔들다 마침내 몸통까지 흔들리는 상황을 뜻하는 이 말은 주로 증권시장에서 주가선물 등 파생상품에 대한 투기적 거래가격이 주가 현물가격을 흔드는 현상을 일컬어 왔다.

투기적 거래가 상품 선물시장까지 확산되면서 대부분의 시장에서 미래의 허구적 가격이 실제 가격을 움직이는 '웨그 더 독' 현상이 극성을 부릴 소지가 있다는 점이다. 아시아 경제위기 이래 10년이 지났지만 세계 경제의 취약성은 더욱 증폭되고 있다는 느낌이다.

뉴욕=장인철특파원 icj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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